금가루가 귀하긴 해도 눈에 들어가면 독이 된다
금가루가 귀하긴 해도 눈에 들어가면 독이 된다
by 정운 스님 2017.09.26
어리석은 사람이 친척 집을 방문했다. 집주인은 손님이 온다고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친척 집에 도착해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먹는 음식마다 음식이 싱거워 맛이 없었다. 실례를 무릎 쓰고 손님은 주인에게 ‘음식이 싱거워 맛이 없다’고 말하자, 주인은 음식마다 소량의 소금을 넣어 간을 맞혔다. 다시 음식을 먹으니, 음식 맛이 달랐다.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최상의 음식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손님은 그 주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소금 때문이군. 조금만 넣어도 음식 맛이 좋은데, 주먹만큼 넣으면 더 맛있을 것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할 때마다 소량의 소금이 아닌 많은 소금을 음식에 넣었다. 이렇게 음식을 여러 날 먹은 뒤, 그는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불교 경전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음식을 지나치게 절제해서 도를 얻는다고 생각하고, 수여일 단식하는 경우를 빗대어 하는 이야기다. 단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서 지나친 고행은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교훈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다.
필자는 앞의 이야기를 다른 측면으로 해석한다. 소량의 소금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지, 넘칠 정도의 소금양은 결국 사람을 병들게 하는 법이다. <임제록>에 ‘금가루가 귀하긴 해도 눈에 들어가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소량의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해주듯이 모든 것에는 적당한 요소에 적당한 만큼의 쓰임이 있는 법이다. 곧 적재적소에 그 쓰임새가 각각 다른 법이지, 좋은 것이라고 누구에게나 다 좋고, 많다고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적절한 요소에 쓰임이 있는 존재이다.
연극이나 연속극의 주인공이 대단한 역할을 하고, 줄거리의 포인트이다. 사람들이 연속극이나 연극이 끝난 뒤, 주인공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마치 조연급의 배우들이나 엑스트라는 존재 가치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필요 없어도 극이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주인공 한 사람이 빛나는 데는 수많은 조연급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빛났던 것이다.
이 세상엔 쓸모없는 물건이 하나도 없듯이 쓸모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각각 그 쓰임이 있는 법이다. 수년 전에 깊은 산골 어느 정자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 정자의 네 기둥이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정자를 지었다. 자연스러운 멋스러움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다. 또 필자는 도자기 그릇이 약간 금이 가면, 버리지 않고 화분으로 사용하는데 그런대로 쓸 만하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수많은 연등을 법당과 도량에 매단다. 각각 하나의 연등이 볼품은 없지만 수백 연등이 함께 모여 있으니, 서로서로를 비춤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돌탑이나 돌로 쌓여진 성벽을 보라. 큰 돌도 있지만, 큰 돌과 큰 돌의 틈새를 끼워주는 중간 돌과 작은 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큰 돌은 큰 돌대로, 작은 돌은 작은 것대로 적재적소의 쓰임새가 있다. 바로 우리 삶도 그러하다. 현 자신의 삶과 자신이라는 존재, 어느 곳에서든 소금과 같은 꼭 필요한 주인공이다. 의기소침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불교 경전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음식을 지나치게 절제해서 도를 얻는다고 생각하고, 수여일 단식하는 경우를 빗대어 하는 이야기다. 단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서 지나친 고행은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교훈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다.
필자는 앞의 이야기를 다른 측면으로 해석한다. 소량의 소금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지, 넘칠 정도의 소금양은 결국 사람을 병들게 하는 법이다. <임제록>에 ‘금가루가 귀하긴 해도 눈에 들어가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소량의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해주듯이 모든 것에는 적당한 요소에 적당한 만큼의 쓰임이 있는 법이다. 곧 적재적소에 그 쓰임새가 각각 다른 법이지, 좋은 것이라고 누구에게나 다 좋고, 많다고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적절한 요소에 쓰임이 있는 존재이다.
연극이나 연속극의 주인공이 대단한 역할을 하고, 줄거리의 포인트이다. 사람들이 연속극이나 연극이 끝난 뒤, 주인공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마치 조연급의 배우들이나 엑스트라는 존재 가치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필요 없어도 극이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주인공 한 사람이 빛나는 데는 수많은 조연급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빛났던 것이다.
이 세상엔 쓸모없는 물건이 하나도 없듯이 쓸모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각각 그 쓰임이 있는 법이다. 수년 전에 깊은 산골 어느 정자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 정자의 네 기둥이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정자를 지었다. 자연스러운 멋스러움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다. 또 필자는 도자기 그릇이 약간 금이 가면, 버리지 않고 화분으로 사용하는데 그런대로 쓸 만하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수많은 연등을 법당과 도량에 매단다. 각각 하나의 연등이 볼품은 없지만 수백 연등이 함께 모여 있으니, 서로서로를 비춤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돌탑이나 돌로 쌓여진 성벽을 보라. 큰 돌도 있지만, 큰 돌과 큰 돌의 틈새를 끼워주는 중간 돌과 작은 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큰 돌은 큰 돌대로, 작은 돌은 작은 것대로 적재적소의 쓰임새가 있다. 바로 우리 삶도 그러하다. 현 자신의 삶과 자신이라는 존재, 어느 곳에서든 소금과 같은 꼭 필요한 주인공이다. 의기소침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