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책
by 김민정 박사 2017.09.25
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
그 밖의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리, 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
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
거덜 난 책등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
- 박기섭, 「책」 전문
또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고 성묘 철이 다가왔다. 조상들에 대해 아버지, 어머니, 형제, 가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가족의 명절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큰 명절인 설과 추석은 평소에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그때만큼은 부모와 자식과 형제가 함께 만나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흥겨운 자리라야 하고 행복한 자리라야 할 것 같다.
이 시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책에 비유했다. 아버지란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다’고 한다. 어머니란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생은 늘 조금 거칠고, 어머니의 생은 늘 눈물겨운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 화자는 둘째 수에서는 거칠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충 읽었던 아버지, 늘 강하고 거친 존재로만 인식했기에 내면도 그러려니 하고 무심했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뒤늦게 성찰하며 그리움을 갖는다. 셋째 수에 오면 늘 젖어있던 어머니이기에 면지가 찍기고 목차마저 희미해지고 거덜 난 책, 그러한 어머니의 깊은 존재감과 은혜를 성찰하고 그 은혜를 모른 채 잊고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중에서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는 더 많은 고생과 은혜가 들어 있음을 화자는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로 표현하고 있다. 그 시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목숨의 때’, ‘보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늙고 지치고 자식들에게 줄 것은 다 준 상태의 아버지, 어머니를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은혜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 온종일 밭을 매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고된 일 끝에/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걸터앉아/ 끼니를 때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꽁꽁 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해도 그래서 동상이 / 가실 날이 없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괜찮다 배부르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더운밥 맛난 찬 그렇게 자식들 다 먹이고 /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가 추위에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고/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게 닳아 문드러져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구한 날 주정을 하고 철부지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이하 생략
늘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우리들, 명절만이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
그 밖의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리, 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
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
거덜 난 책등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
- 박기섭, 「책」 전문
또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고 성묘 철이 다가왔다. 조상들에 대해 아버지, 어머니, 형제, 가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가족의 명절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큰 명절인 설과 추석은 평소에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그때만큼은 부모와 자식과 형제가 함께 만나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흥겨운 자리라야 하고 행복한 자리라야 할 것 같다.
이 시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책에 비유했다. 아버지란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다’고 한다. 어머니란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생은 늘 조금 거칠고, 어머니의 생은 늘 눈물겨운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 화자는 둘째 수에서는 거칠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충 읽었던 아버지, 늘 강하고 거친 존재로만 인식했기에 내면도 그러려니 하고 무심했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뒤늦게 성찰하며 그리움을 갖는다. 셋째 수에 오면 늘 젖어있던 어머니이기에 면지가 찍기고 목차마저 희미해지고 거덜 난 책, 그러한 어머니의 깊은 존재감과 은혜를 성찰하고 그 은혜를 모른 채 잊고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중에서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는 더 많은 고생과 은혜가 들어 있음을 화자는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로 표현하고 있다. 그 시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목숨의 때’, ‘보풀’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늙고 지치고 자식들에게 줄 것은 다 준 상태의 아버지, 어머니를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은혜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 온종일 밭을 매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고된 일 끝에/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걸터앉아/ 끼니를 때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꽁꽁 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해도 그래서 동상이 / 가실 날이 없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괜찮다 배부르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더운밥 맛난 찬 그렇게 자식들 다 먹이고 /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가 추위에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고/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게 닳아 문드러져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구한 날 주정을 하고 철부지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이하 생략
늘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우리들, 명절만이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