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작은 손실을 보지 않으려다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

작은 손실을 보지 않으려다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

by 정운 스님 2017.09.19

몇 주 전에 황당한 사건이 부산에서 있었다.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40대 여자가 갇히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작동되지 않자, 당황한 그녀는 관리사무실에 비상벨을 눌렀다. 관리소의 소장도 기계를 고치지 못하자, 다음 아파트 보안 요원이 출동했다. 또 보안요원이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자, 119에 신고를 했고 몇 분 후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119구조대가 가져온 장비로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자, 관리소장은 엘리베이터를 파손하면 안 된다고 열지 못하게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공포에 떨던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했고, 남편이 도착해서 큰소리를 내고서야 강제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그녀를 구조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던 그녀는 공포로 결국 실신된 상태였다. 혹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이거나 어린아이였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황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 사람이 구조가 되었으니 망정이지, 혹 구조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이런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혜롭게 해결한 어느 꼬마 이야기가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자치통감>을 편찬했던 사마광(1019~1086)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사마광은 신법(新法)을 주장한 왕안석(1021~1086)과 대립함으로써 역사적으로 평가가 엇갈리지만, 송대 학자요, 재상까지 겸한 정치가이다. 어쨌든 그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린 꼬마 사마광이 친구들과 후원 부근에서 놀고 있었다. 후원 안에는 돌을 쌓아 올린 작은 돌탑이 있었고, 돌탑 아래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 커다란 물 항아리가 있었다. 마침 한 친구가 그 항아리에 빠졌다. 친구들은 모두 당황하여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떤 아이는 어른을 찾으러 뛰어갔다. 한 어른이 와서 사다리를 올리기도 하고, 밧줄을 가져오는 등 난리법석이었다. 이러는 사이, 물에 빠진 아이는 허우적거리며, 죽음 직전이었다. 이때 사마광은 침착하게 돌 하나를 집어 있는 힘을 다해 항아리를 깨뜨렸다. 자연스럽게 물에 빠진 친구는 살아날 수 있었다.
사람이 다급한 상황에서 살릴 수 있는 방법에는 간단한 원리가 숨겨 있다. 그런데 앞의 두 이야기에서 보듯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당황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보다 경제적인 계산을 우위에 둔다는 점이 인간 심리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손실을 보지 않으려다가 결국 더 큰 손실을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저 아파트 소장이 바로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이다. 자신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요, 법적인 문제까지 책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보다 더 심각한 상태이다. 주인이 원숭이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먹이를 준다고 하자, 원숭이가 화를 내었다는 고사가 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 비유하는 이야기다.
경제적 물질이나 돈은 생겼다가 없어질 수도 있고, 없다가도 얼마든지 만들어지는 무한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한정되어 있다. 곧 유한한 것으로 한 번 손실되면 영원히 잃게 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 목숨 귀한 것, 내가 고통에 빠졌을 때의 상황으로 역지사지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