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와 애국
무궁화와 애국
by 강판권 교수 2017.09.04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삼천리강산의 국화(國花)다. 요즘 전국 어딜 가더라도 무궁화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금처럼 무궁화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과학기술 덕분이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은 나무로 인식했다. 실제 내가 어린 시절 본 무궁화는 대부분 진딧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궁화에 진딧물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전문가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무궁화를 개량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무궁화는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강릉 박씨 중시조 박수량의 재실에 살고 있다. 110살 정도의 이곳 무궁화는 천연기념물 제520호다. 이곳의 무궁화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의 90-100살 천연기념물 제521호 무궁화와 함께 아주 귀한 나무다. 보통 무궁화는 50살을 넘기기가 어렵다. 나의 고향 대문 옆 무궁화는 40살 정도지만 현재 고사 직전이다. 그러나 내가 올여름에 만난 강릉의 무궁화는 아직도 꽃을 피울 만큼 건강한 편이다.
무궁화는 원산지와 의미를 둘러싼 논쟁을 안고 있는 나무다. 특히 무궁화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나무를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무궁화의 중요한 특징은 꽃이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 꽃을 빠른 흥망성쇠에 비유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무궁화의 생태에서 끝없는 변화를 읽는다. 무궁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전자에 해당하고, 무궁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후자에 속한다. 무궁화에 대한 상반된 인식은 단순히 생각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생각의 차이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를 반영한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전국에 무궁화를 심는 것만큼 무궁화의 의미를 한층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궁화의 무궁(無窮)과 우리나라 태극기인 태극(太極)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다. ‘끝이 없다’는 뜻의 무궁과 태극은 같은 의미다. 태극은 무극(無極)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무궁화의 궁과 태극기의 극은 같은 뜻이다. 무궁과 태극은 단순히 마지막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뜻한다. 무궁과 무극은 세상을 창조하는 개념이다.
나는 아직 세계 어디에도 무궁화와 같은 의미를 가진 나무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 꽃은 우주 만물의 원리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변화의 철학을 담고 있는 고전이 역경(易經)이다. ‘역’은 ‘생생(生生)’을 뜻한다. 무궁화의 삶은 곧 ‘나고 또 나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이 닮아야 할 진정한 태도다. 우리나라가 강대국 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무궁화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무궁화처럼 아주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도 많지 않다.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넘친다는 뜻이다. 에너지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도 무궁화를 무척 닮았다. 진정한 애국은 무궁화를 사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궁화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며, 기념일에 태극기를 꽂고 손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극의 의미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무궁화는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강릉 박씨 중시조 박수량의 재실에 살고 있다. 110살 정도의 이곳 무궁화는 천연기념물 제520호다. 이곳의 무궁화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의 90-100살 천연기념물 제521호 무궁화와 함께 아주 귀한 나무다. 보통 무궁화는 50살을 넘기기가 어렵다. 나의 고향 대문 옆 무궁화는 40살 정도지만 현재 고사 직전이다. 그러나 내가 올여름에 만난 강릉의 무궁화는 아직도 꽃을 피울 만큼 건강한 편이다.
무궁화는 원산지와 의미를 둘러싼 논쟁을 안고 있는 나무다. 특히 무궁화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나무를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무궁화의 중요한 특징은 꽃이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 꽃을 빠른 흥망성쇠에 비유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무궁화의 생태에서 끝없는 변화를 읽는다. 무궁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전자에 해당하고, 무궁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후자에 속한다. 무궁화에 대한 상반된 인식은 단순히 생각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생각의 차이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를 반영한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전국에 무궁화를 심는 것만큼 무궁화의 의미를 한층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궁화의 무궁(無窮)과 우리나라 태극기인 태극(太極)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다. ‘끝이 없다’는 뜻의 무궁과 태극은 같은 의미다. 태극은 무극(無極)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무궁화의 궁과 태극기의 극은 같은 뜻이다. 무궁과 태극은 단순히 마지막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뜻한다. 무궁과 무극은 세상을 창조하는 개념이다.
나는 아직 세계 어디에도 무궁화와 같은 의미를 가진 나무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 꽃은 우주 만물의 원리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변화의 철학을 담고 있는 고전이 역경(易經)이다. ‘역’은 ‘생생(生生)’을 뜻한다. 무궁화의 삶은 곧 ‘나고 또 나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이 닮아야 할 진정한 태도다. 우리나라가 강대국 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무궁화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무궁화처럼 아주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도 많지 않다.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가 넘친다는 뜻이다. 에너지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도 무궁화를 무척 닮았다. 진정한 애국은 무궁화를 사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궁화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며, 기념일에 태극기를 꽂고 손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극의 의미대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