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유머
거미의 유머
by 한희철 목사 2017.08.30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해학(諧謔)을 뜻하는 ‘유머’는 막혔던 숨을 탁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싶습니다. 마치 물속에 잠겨 숨을 쉬지 못했던 이가 물 밖으로 나와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지요.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는 것과도 같아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유머리스트의 반대말은 재미없는 사람이나 딱딱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맞겠다 싶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 실수로 선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취임식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를 다시 했는데, 그때 오바마는 선서를 다시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한번 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한 여유와 유머가 있기에 한 나라를 이끌어갔지 싶기도 합니다.
열하루 동안 비무장지대를 걷다가 만난 거미의 유머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화천을 떠나 철원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화천과 철원이 강원도에 있는 것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천과 철원 사이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가진 어떤 지역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화천과 철원은 고개 하나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화천 다목리에서 수피령 고개를 넘으니 바로 철원 땅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수피령 고개는 걸어서 쉽게 넘을 만만한 고개가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지요.
앞뒤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외진 길을 한참을 걸어가다가 도로 곁에 있는 밭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외진 곳도 누군가 땅을 놀리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보니 밭 가장자리엔 말뚝이 나란히 박혀 있었고 말뚝에는 전선이 묶여 있었습니다. 전기가 흐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있는 것을 보면, 먹을 것을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 산짐승들을 쫓기 위한 전깃줄이다 싶었습니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글을 모르는 짐승들만 놀라 뒷걸음질을 치겠구나 싶을 때였습니다. 밭이 끝나는 자리에 마지막 말뚝이 섰고 전선들도 그곳에서 멈춰섰는데, 마지막 말뚝과 그 옆에 선 자작나무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선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유심히 바라보니 거미줄이었습니다. 얼마를 먹든 같이 먹지 전깃줄이 다 뭐래요, 어디선가 숨어 슬며시 건네는 거미의 유머에 험한 수피령 고개가 문득 너그럽지 싶었답니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는 것과도 같아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유머리스트의 반대말은 재미없는 사람이나 딱딱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맞겠다 싶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 실수로 선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취임식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를 다시 했는데, 그때 오바마는 선서를 다시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한번 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한 여유와 유머가 있기에 한 나라를 이끌어갔지 싶기도 합니다.
열하루 동안 비무장지대를 걷다가 만난 거미의 유머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화천을 떠나 철원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화천과 철원이 강원도에 있는 것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천과 철원 사이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가진 어떤 지역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화천과 철원은 고개 하나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화천 다목리에서 수피령 고개를 넘으니 바로 철원 땅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수피령 고개는 걸어서 쉽게 넘을 만만한 고개가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지요.
앞뒤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외진 길을 한참을 걸어가다가 도로 곁에 있는 밭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외진 곳도 누군가 땅을 놀리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보니 밭 가장자리엔 말뚝이 나란히 박혀 있었고 말뚝에는 전선이 묶여 있었습니다. 전기가 흐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있는 것을 보면, 먹을 것을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 산짐승들을 쫓기 위한 전깃줄이다 싶었습니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글을 모르는 짐승들만 놀라 뒷걸음질을 치겠구나 싶을 때였습니다. 밭이 끝나는 자리에 마지막 말뚝이 섰고 전선들도 그곳에서 멈춰섰는데, 마지막 말뚝과 그 옆에 선 자작나무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선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유심히 바라보니 거미줄이었습니다. 얼마를 먹든 같이 먹지 전깃줄이 다 뭐래요, 어디선가 숨어 슬며시 건네는 거미의 유머에 험한 수피령 고개가 문득 너그럽지 싶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