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정형을 벗다
돌, 정형을 벗다
by 김민정 박사 2017.08.28
익숙한 것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눈과 귀는
남들이 정해 놓은 틀 속에서 미를 찾고
그들을 흉내 내면서 따라가기 바빴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정형의 틀 벗은 돌들
새롭게 눈을 뜨고 새롭게 귀를 열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다시 듣고 다시 본다
금 가고 깨어지고 틀어지고 못생겨도
눈을 밝게 열어주고 귀를 맑게 씻어주는
그 속엔 미처 몰랐던 그들만의 힘이 있다
파격 속에도 미가 있고 생명들이 꿈틀댄다고
세월의 흔적이 있고 역사의 주름이 있다고
정형을 튀어나온 들들이 저저마다 소리친다
저 돌 속엔 꿈과 사랑, 노래와 낭만이 있다
산이 있고 폭포가 있고 그사이 인간이 있다
천 년의 미소가 흐르고 연화봉이 솟아 있다
사람이 돌을 만나고 돌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순간 깊어진다고
오늘도 꿈꾸는 돌을 만난다, 사람들을 만난다
졸시, 「돌, 정형을 벗다」 전문
얼마 전 부산의 ≪돌, 정형을 벗다≫수석전시장에 초대를 받아 시를 한 편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시된 작품을 미리 둘러보고 썼던 시조작품이다. 돌이 원래 정형이 있는 것은 아닌데, 수석을 즐기고 그것을 보면서 인격 수양까지 곁들이는 수석인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모암, 질감, 색채, 문양, 내용이 은연중에 형성되어 온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틀이 어디 돌 뿐이겠는가. 우리들 살아가는 삶의 모든 규범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돌, 정형을 벗다≫라는 수석전시는 지금까지의 잣대에서 벗어나 수석에 대한 새로운 아름다움에 도전해 본 행사라 여겨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추(美醜)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새소리도 듣는 사람이 그것을 취할 마음의 자세가 안 되어 있으면 그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김춘수의 「꽃」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게 여유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의 가치도 살아나는 것이다.
그곳에 전시되었던 수석들도 기존의 분류대로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美)란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날, 수석전시장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양과 질감과 색채와 문양과 내용도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했다.
그들은 생긴 그대로 있지만,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새로울 수 있다. 서양의 미술이 시대에 따라 미(美)를 달리 표현하며 발전해 왔듯이, 수석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수석전시장에 나온 돌들은 수석가들이 선별하여 전시하는 것인 만큼 자세히 보면 그것 나름의 아름다움을 저마다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보는 태도에 달려있다. 세상의 사물들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 또 그 가치를 파악하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남들이 정해 놓은 틀 속에서 미를 찾고
그들을 흉내 내면서 따라가기 바빴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정형의 틀 벗은 돌들
새롭게 눈을 뜨고 새롭게 귀를 열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다시 듣고 다시 본다
금 가고 깨어지고 틀어지고 못생겨도
눈을 밝게 열어주고 귀를 맑게 씻어주는
그 속엔 미처 몰랐던 그들만의 힘이 있다
파격 속에도 미가 있고 생명들이 꿈틀댄다고
세월의 흔적이 있고 역사의 주름이 있다고
정형을 튀어나온 들들이 저저마다 소리친다
저 돌 속엔 꿈과 사랑, 노래와 낭만이 있다
산이 있고 폭포가 있고 그사이 인간이 있다
천 년의 미소가 흐르고 연화봉이 솟아 있다
사람이 돌을 만나고 돌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순간 깊어진다고
오늘도 꿈꾸는 돌을 만난다, 사람들을 만난다
졸시, 「돌, 정형을 벗다」 전문
얼마 전 부산의 ≪돌, 정형을 벗다≫수석전시장에 초대를 받아 시를 한 편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시된 작품을 미리 둘러보고 썼던 시조작품이다. 돌이 원래 정형이 있는 것은 아닌데, 수석을 즐기고 그것을 보면서 인격 수양까지 곁들이는 수석인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모암, 질감, 색채, 문양, 내용이 은연중에 형성되어 온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틀이 어디 돌 뿐이겠는가. 우리들 살아가는 삶의 모든 규범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돌, 정형을 벗다≫라는 수석전시는 지금까지의 잣대에서 벗어나 수석에 대한 새로운 아름다움에 도전해 본 행사라 여겨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추(美醜)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새소리도 듣는 사람이 그것을 취할 마음의 자세가 안 되어 있으면 그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김춘수의 「꽃」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게 여유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의 가치도 살아나는 것이다.
그곳에 전시되었던 수석들도 기존의 분류대로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美)란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날, 수석전시장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양과 질감과 색채와 문양과 내용도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했다.
그들은 생긴 그대로 있지만,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새로울 수 있다. 서양의 미술이 시대에 따라 미(美)를 달리 표현하며 발전해 왔듯이, 수석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수석전시장에 나온 돌들은 수석가들이 선별하여 전시하는 것인 만큼 자세히 보면 그것 나름의 아름다움을 저마다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보는 태도에 달려있다. 세상의 사물들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 또 그 가치를 파악하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