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만날 만한 것은 만날 만한 때에

만날 만한 것은 만날 만한 때에

by 한희철 목사 2017.08.23

오래전에 전우익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조용한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면서 숫돌에 갈 듯 생각을 벼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쓰신 분이지요.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였습니다. 통로 맞은편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전우익 선생님이었습니다. 백발과 굵은 주름과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책에 실려 있던 그분의 흑백사진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종점인 청량리에서 내리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다음 목적지도 비슷하여 독자의 한 사람으로 선생님께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종로서적 뒤편에서 콩나물국밥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이 쓴 책을 읽고는 언젠가는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노라고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날 만한 사람은 만날 만한 때에 만나기 마련이지요.” 오래전 일입니다만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대하게 된 이야기 하나가 그때 그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기사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는데,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작은 크기의 당근 한가운데를 어떤 둥근 고리가 두르고 있었는데, 당근은 그 고리로 인하여 가운데 부분이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캐나다 서부 앨버타주에 사는 올해 84세의 메리 그램스 할머니는 13년 전 가족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귀중한 물건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약혼반지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66년 전 남편에게서 받은 약혼반지, 메리 할머니는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농장 구석구석을 다 뒤졌으나 끝내 찾아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며느리가 저녁에 먹을 당근을 밭에서 뽑게 되었는데, 당근 중에 이상하게 생긴 당근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가운데가 잘록하게 생긴 당근이 나왔던 것입니다. 흙을 털어내고 보니 당근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은 놀랍게도 다이아몬드 반지였습니다. 13년 전에 메리 할머니가 잃어버린 바로 그 반지였던 것입니다. 지극히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당근 뿌리가 반지 사이를 통과해서 자란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지를 잃어버린 메리 할머니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지 못했다는데, 메리의 남편도 5년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메리 할머니에게 그 반지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을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내가 기다리고 있는 그 어떤 일이든, 만날 만한 것은 만날 만한 때에 만나게 되어 있다는 기대를 품고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지금 당장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것이 아니라 만날 만한 때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삶에 그리움과 희망은 가만히 둥지를 트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