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용수철과 여름

용수철과 여름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08.16

여름이 깊어가면서 집 뒤편 미타사 비탈길 숲은 매미들의 합창에 온갖 풀벌레들이 가세하여 여름날의 대향연을 연출한다. 나는 향연을 즐기지만 그들은 어쩌면 천신만고 끝에 부르는 첫 노래일 수도 있고, 이 여름과 함께 작별을 고하는 절박한 함성인지도 모르겠다.
옛날의 장마처럼 무더위도 지루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요즘 무엇보다 여름의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추위보다 더위가 훨씬 힘이 세다. 에베레스트 등정, 북극점 탐험 등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탐험가 최종열 대장은 사하라 사막을 도보로 횡단할 때 가장 그리웠던 게 바로 북극점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름이야말로 젊음의 계절이고 낭만의 시절이 아니던가. 덥다고 축 늘어져 있으면 마냥 무기력해지는 게 여름이다.
여기서 순간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스프링, 용수철이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 뛰어오르듯이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스프링이라고 하지만 난 용수철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용수철은 가해지는 힘에 따라 그 모양이 수시로 바뀐다.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유연함을 과시한다. 하나의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나툰다. 이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지고 늘 변화를 준비하고 즐기는 사람을 닮았다. 그런 사람은 탄력 있는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어떤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무더위에 불쾌지수가 높아지면 감정의 탄력성을 잃기 쉽다. 축 늘어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 탄성한계를 넘어선 용수철처럼 짜증이나 기복이 심한 감정은 일상의 여여한 마음으로 잘 돌아오지 않는다. 짜증은 쉽게 가시지 않고 감정의 악순환이 시작되어 머피의 법칙이 내 삶에 똬리를 튼다. 그러다 보면 여름은 청년 같은 생기발랄한 계절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지루하고 따분한 시절이 되어버린다.
회복탄력성이라는 게 있다.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수많은 역경과 시련, 뼈아픈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탄성이 다르다. 역경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들이면 놀랍게 향상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상의 삶 속에서 훈련하지 않으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몸의 근육이 오랜 시간 동안 기울여온 꾸준한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일상은 시골의 대목장 같은 날도 있지만 대개는 파리 날리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니 무더운 여름날처럼 삶이 따분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삶이 무료하다는 것은 삶이 아직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고 내가 살아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그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용수철처럼 생기발랄하게 튀어 오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삶을 살 것인가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삶의 타성에 빠지지 않고 삶에 즐거운 자극을 주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입추, 말복이 지났고 곧 처서이니 이제 가을의 도래는 대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듯이 ‘다 지나간다’. 무더운 여름날이라고 끝까지 버틸 뭔 힘이 있겠는가.
용수철같이 톡톡 튀는 삶에 대한 생각이 여름의 후반전에서야 떠오르다니 아쉽다. 역시 타성과 무기력의 늪이 깊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