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격(格)과 결

격(格)과 결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08.03

고향집 어귀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사람이 참 부럽다. 긴 세월 그곳에 서서 온갖 비바람과 추위와 함께해 온 느티나무의 의연함과 기개가, 고작해야 100년을 살까말까한 사람들과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 무엇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견뎌온 것을 나무테로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얼렁뚱땅 속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무나 자연이 때론 경외감의 대상이며 나아가 수호신이 되기도 하나 보다.
나무의 나이테 때문에 생기는 것이 바로 나뭇결이다, 켜는 각도에 따라 평행선 모양으로, 또는 물결무늬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난 나뭇결의 자연스러움이 참 좋다. 결을 따라가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결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되어 있다.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니 그 속에 ‘오랜 시간’이 들어있고, 시간을 통해 형성된 ‘작은 질서’가 보인다. 결국 결이란 오랜 시간 속에서 형성된 질서(무늬)라는 뜻이겠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대충해서 만들어질 수 없는 진실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결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나뭇결이 있듯이 인생결, 사람결도 있다. 오랜 시간 희로애락의 삶 속에서 형성된 그만의 질서, 무늬 말이다. 그 결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강물이 흘러가듯이 바람이 불어가듯이 삶에 구김살이 생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결을 따라가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그 공동체에 평화가 깃든다.
이렇듯 결고운 인연들 속에서는 나만의 이익이나 고집 대신 함께 살아가는 재미와 즐거움이 솔솔 묻어난다.
이와 대비되는 단어로 격(格)이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라고 되어 있다. 어라,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긍정적인 뜻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격을 삶에 다르게 적용하며 살고 있을까.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격을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격도 결을 따라가야 하는데 격이 경직되고 틀에 갇히게 되면 후유증과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폼 잡으려다 낭패를 당하는 것이다.
격이 결과 분리되면 때로는 편을 가르게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타고난 격이 따로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삶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만의 아집과 욕심에 따라 격을 맞추다 보면 때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결혼은 격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결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격혼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것, 공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현재 그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껏 오랜 시간 그가 만들어 온 삶의 격과 결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 삶의 격과 결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경외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결에 중심을 둔 격, 자연스러운 결이 녹아있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보다 더 필요한 적이 있었을까. 바로 그런 삶에서 이해와 배려, 상식과 정의가 샘물처럼 솟아날 것이다.
오늘 난 어떤 나만의 결로 세상과 사람들과 결고운 인연을 가꾸어가며 살아갈까.
결이 녹아있는 삶이 가장 격이 있는 삶, 격조와 품위 있는 삶이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