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흥부의 고향

흥부의 고향

by 이규섭 작가 2017.07.21

‘흥부마을’을 취재한 것은 1991년,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향토사학자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남원군 동면 성산리(지금은 남원시 아영면 성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흥부의 고향으로 추정하는 첫 번째 근거가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다. ‘연재(女院峙·여원치)를 넘어 ‘비전’을 지나 팔량재 밑에 당도, 흥보집을 빙빙 돌더니 저 제비 거동 보소’라는 대목이다. 여원치(477m)는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이고, 팔량재 부근마을이다.
‘비전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의 고향으로 박초월 명창도 이곳에서 태어나 동편제의 맥을 이었다. 타계하기 전 인터뷰 했던 ‘흥보가’ 인간문화재 강도근 명창(1918∼1996년·안숙선 명창 외삼촌)의 고향도 남원으로 판소리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옛 운봉현은 형장 터가 있던 곳으로 성리에서 2㎞, 가난에 찌든 흥부가 매품을 팔았던 곳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흥보가’ 중 ‘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함양 두 얼품(두 지역이 맞닿은 곳)에 흥보가 사는지라’ 대목도 나온다. 남원시 아영면은 함양군 백전면과 경계다. 향토사학자는 이 마을에 살았던 천석지기 ‘임 부자’가 흥부 모델이라는 이색 주장을 편다.
1991년 12월 성산리 뒷산에서 돌비석이 발견됐다. 앞면에는 ‘절충장군 임세강지묘’라는 표지가 뒷면에는 ‘성품이 온화하고 어질며 형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따랐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묘비명의 주인이 박춘보(朴春甫·흥보)라고 추정한다. 남원시는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흥부마을을 조성하고 1993년부터 ‘흥부제’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 ‘흥부전’의 필사본으로 가장 오래된 ‘흥보만보록’이 발견되어 화제다. 흥부와 놀부를 평양 출신 평민으로 설정한 점, 흥부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德水 張氏)의 시조가 되었다는 서술, 놀부가 악인이 아니라는 설정이 기존의 이야기와 다르다. 판소리의 기원과 흥부의 성(姓), 고향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제기됐다.
판소리의 기원은 호남지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1833년에 쓰인 것으로 밝혀진 ‘흥보만보록’은 판소리의 서도(西道) 유래설을 뒷받침한다. 학계에서는 이 필사본을 근거로 흥부전이 서도 지방에서 유래했지만, 판소리의 주도권이 호남으로 넘어오면서 흥부의 고향이 남도로 알려진 것으로 유추한다.
흥부의 성이 박 씨가 된 것은 조선 말기 판소리연구가 신재효(1812∼1884)가 판소리 ‘흥보가’에서 박가(朴哥)라고 하면서다. 그 뒤 소설가 이해조(1869∼1927)가 ‘연(燕)의 각(脚)’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흥부의 성을 연(燕) 씨라고 붙여 그동안 박 씨와 연 씨로 알려졌으나 장 씨가 덧붙여지게 됐다.
‘판소리 답사기행’ 저자와 ‘흥부마을’ 탐방의 필자로서 보완할 점은 있다. 다른 고전소설과 마찬가지로 흥부전과 관련된 필사본만 30여 종의 이본(異本)이 존재한다. 판소리도 ‘박타령’을 비롯하여 19종의 창본(唱本)이 전해져 온다. ‘흥보만보록’은 흥보전의 다양성과 확장성의 새로운 기록으로 보면 무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