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을 걷다
폭우 속을 걷다
by 한희철 목사 2017.07.19
그날 그 시간은 잊을 수가 없겠다 싶습니다. 지금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비가 오면 문득 그 시간이 떠올라 빙긋 웃음이 나곤 합니다.
열하루 동안 DMZ 인근 마을을 걷기 위하여 나선 길, 둘째 날은 거진항을 떠나 진부령 정상까지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는 소똥령 마을은 이름부터가 재미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소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을 것 같고, 목에 건 방울 소리가 낭랑하게 바람에 실려 올 것 같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니 점심때쯤엔 소똥령 마을에 도착할 수가 있었고, 소똥령 마을에 가면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했던 생각과는 달리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을 어렵게 찾아 점심을 먹고는 다시 오른 길이 진부령이었습니다.
열하루 동안 걸었던 길의 대부분은 위험한 길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도로에 인도가 따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야 하니 차도 사람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막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성긴 빗방울이지만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빗줄기는 이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당황하여 라이트를 켜더니 그것도 모자라 비상등을 켜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얼른 우비를 꺼내 입고 메고 있던 배낭을 덮개로 씌웠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젖고 말았습니다. 신발 또한 물속에서 구멍이 뚫린 장화를 신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법 경사가 진 도로였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로 위에는 빗물이 가득했습니다.
폭우는 어느새 우박과 섞이기 시작했고, 비와 함께 울리기 시작한 천둥과 번개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계곡이 요란하게 울릴 때마다 골짜기 어디에선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 손엔 스틱을 잡았고 호주머니 안엔 핸드폰이 들어 있었으니, 몹시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계곡과 하늘을 가득 채운 강한 비와 요란한 천둥과 번개와 우박, 길옆으로 보이는 민박집으로 들어갈까,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들어 도움을 청할까, 고민을 한 끝에 그냥 계속해서 걷기로 했습니다. 내 생애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악천후,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악천후가 처음인 것처럼 그 속을 걷는 일 또한 다시없을 경험,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필시 차를 몰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폭우 속을 걷고 있는 나를 보며 세상에는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며 혀를 찼겠지만, 폭우 속을 걸어 올랐던 진부령의 시간은 내 마음속에 남아 어떤 악천후라도 웃으며 맞을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이 되었지 싶습니다.
열하루 동안 DMZ 인근 마을을 걷기 위하여 나선 길, 둘째 날은 거진항을 떠나 진부령 정상까지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는 소똥령 마을은 이름부터가 재미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소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을 것 같고, 목에 건 방울 소리가 낭랑하게 바람에 실려 올 것 같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니 점심때쯤엔 소똥령 마을에 도착할 수가 있었고, 소똥령 마을에 가면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했던 생각과는 달리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을 어렵게 찾아 점심을 먹고는 다시 오른 길이 진부령이었습니다.
열하루 동안 걸었던 길의 대부분은 위험한 길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도로에 인도가 따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야 하니 차도 사람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막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성긴 빗방울이지만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빗줄기는 이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당황하여 라이트를 켜더니 그것도 모자라 비상등을 켜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얼른 우비를 꺼내 입고 메고 있던 배낭을 덮개로 씌웠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젖고 말았습니다. 신발 또한 물속에서 구멍이 뚫린 장화를 신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법 경사가 진 도로였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로 위에는 빗물이 가득했습니다.
폭우는 어느새 우박과 섞이기 시작했고, 비와 함께 울리기 시작한 천둥과 번개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계곡이 요란하게 울릴 때마다 골짜기 어디에선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 손엔 스틱을 잡았고 호주머니 안엔 핸드폰이 들어 있었으니, 몹시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계곡과 하늘을 가득 채운 강한 비와 요란한 천둥과 번개와 우박, 길옆으로 보이는 민박집으로 들어갈까,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들어 도움을 청할까, 고민을 한 끝에 그냥 계속해서 걷기로 했습니다. 내 생애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악천후,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악천후가 처음인 것처럼 그 속을 걷는 일 또한 다시없을 경험,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필시 차를 몰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폭우 속을 걷고 있는 나를 보며 세상에는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며 혀를 찼겠지만, 폭우 속을 걸어 올랐던 진부령의 시간은 내 마음속에 남아 어떤 악천후라도 웃으며 맞을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이 되었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