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마당귀에 심은 뜰보리수 한 그루

마당귀에 심은 뜰보리수 한 그루

by 권영상 작가 2017.07.13

요란한 천둥소리에 마루로 나왔다. 소낙비가 퍼부었다. 장엄한 폭우 수준이다. 비 구경을 하다 말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쳐 방바닥이 흥건하다. 빗물을 훔치며 생각해 보니 뒤란에 널어놓은 파 씨가 있다. 신문지에 널어놓은 파 씨가 빗물에 범벅이다. 소낙비가 사람의 혼쭐을 뺀다.
우산을 쓰고 엊그제 이식해놓은 파밭에 나갔다. 물길을 찾지 못한 빗물이 파 고랑에 펀하게 고였다. 괭이를 찾아들고 물길을 내준다. 막힌 물이 쿨썩 터져난다.
그 무렵, 내 귀에 건너편 산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괭이를 짚고 허리를 펴 보니 소낙비가 그쳤다. 하늘이 멀게진다. 꾀꼬리가 비 그친 신호를 보낸 셈이다. 기다렸다는 듯 물까치들이 마당귀 뜰보리수나무로 날아온다. 여름 내내 뜰보리수 단맛에 길들었으니 잠시도 단맛을 잊을 수 없겠다. 요즘은 꾀꼬리 부부가 주 단골이다. 건넛산에서 마치 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쭉 내려오듯 일직선으로 날아와 실컷 보리수를 따 먹고는 돌아갈 때도 케이블카를 타듯 쭈욱 일직선으로 날아가서는 산중턱 참나무숲에 든다. 동네에 사는 박새, 참새, 까치들도 노상에 와 산다. 하늘색 줄무늬 어치며, 수다쟁이 직박구리도 어디서 소문을 듣는지 심심찮게 찾아온다.
마당귀에 무슨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던 때가 5년 전이다. 유실수를 심어 과일 따는 재미를 보라는 게 주위 분들의 충고였다. 근데 나 먹자고 심은 과일나무 과일을 나 좋자고 똑똑 따는 상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함께 사는 동네 새들을 외면할 수 없어 선택한 나무가 뜰보리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이 옳았다. 올해는 뜰보리수 꽃이 좋았다. 벌들이 회양목 꽃을 좋아하듯 보리수꽃도 좋아한다. 그 탓에 보리수 열매가 풍년이다. 가끔은 새들이 그 빨간 열매를 따 먹어보라고 마루 난간에 한두 알 놓아두고 간다. 홍보석 같다.
열매 맛이 좋다. 먹어보면 새들이 반할 만큼 달다. 가뭄이 길어 더구나 달다. 해가 져 어수룩해질 때까지도 새들은 그 맛을 떨치지 못해 풀방구리 드나들 듯 드나들며 제집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보리수나무는 즐겁다. 아침저녁으로 새들을 위해 한 솥씩 빨간 홍보석 밥을 짓는다. 제집 찾아오는 손님을 배불리 먹여 보내자는 게 보리수나무다. 넉넉히 먹여주면 새들은 밥값으로 노래를 부른다. 열매가 무르익어 발효된 탓일까. 새들 노래에 취기가 돈다. 정해진 발성법을 버리고 무형식의 노래를 술 취한 듯 부른다. 억양이나 리듬마저 거칠고 요란하다.
한 그릇씩 밥을 해 먹이는 뜰보리수나무는 힘들겠지만 사는 맛이 날 테다. 바라보는 나도 좋다. 올해는 처음부터 보리수 열매에 절대 손대지 말고 오로지 자연에 헌사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 덕분에 우리 집 마당귀가 이 동네에서 가장 붐비게 됐다. 나 혼자 따먹기에 딱 맞는 과일을 심었더라면 이런 풍족함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건너편 산 위로 한 뭉치 흐릿한 구름이 또 몰려온다. 장마 중의 소낙비라 하여도 좋다. 가뭄에 목말라한 아픔이 온몸 구석구석에 상처처럼 남아있는 모양이다. 또 비가 온대도 좋기만 하다. 파밭에 나간다. 손구락을 밭고랑에 찔러본다. 물씬 들어간다. 비가 어지간히 온 모양이다. 밭 가장자리 들깨가 확 잎을 편다. 진딧물에 시달리던 고추밭 고춧잎이 푸르다. 토마토가 눈에 보이도록 붉게 익어가고, 쑥갓 꽃빛이 더욱 노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