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창의성
나팔꽃과 창의성
by 강판권 교수 2017.07.10
모든 존재는 무한한 창의성을 갖고 태어난다. 창의성을 드러내는 일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창의성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누구나 일정한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다르다. 그래서 누구든지 창의성을 드러내고 싶지만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메꽃과의 나팔꽃은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팔거천에도 나팔꽃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그러나 나팔꽃의 씨앗은 다른 풀들이 무성하면 돋아나기가 쉽지 않다. 나팔꽃의 씨앗은 다른 풀이 무성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요즘 가뭄이 계속되면서 다른 풀들이 말라 죽는 터에 나팔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땅속에 묻혀 있던 나팔꽃의 씨앗이 다른 풀들이 죽으면서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팔꽃처럼 한 생명체가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만약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을 기다리지 않고 삶을 포기했다면 다른 풀들이 죽는 상황이 오더라도 꽃을 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냥 시간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는 절호의 기회가 오더라도 창의성을 드러낼 수 없다.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의 기회를 만나자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기회를 기다리면서 쉼 없이 발아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창의성을 드러낼 기회를 맞는다. 그러나 누구나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아주 많다. 그런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하고 다방면으로 분산한다. 에너지를 다방면으로 분산하면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 덕분에 자신의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발아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장난감 놀이에 열중하는 어린애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듯이, 한 존재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다.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나팔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오로지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나팔꽃의 노력 덕분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더욱이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삶은 장단으로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루살이과 하루살이의 삶이 고작 하루일지라도 수 천 년을 사는 나무보다 못하지 않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어떤 경우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는 순간 창의성을 드러낼 수 없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속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성찰의 시간이다.
메꽃과의 나팔꽃은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팔거천에도 나팔꽃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그러나 나팔꽃의 씨앗은 다른 풀들이 무성하면 돋아나기가 쉽지 않다. 나팔꽃의 씨앗은 다른 풀이 무성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요즘 가뭄이 계속되면서 다른 풀들이 말라 죽는 터에 나팔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땅속에 묻혀 있던 나팔꽃의 씨앗이 다른 풀들이 죽으면서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팔꽃처럼 한 생명체가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만약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을 기다리지 않고 삶을 포기했다면 다른 풀들이 죽는 상황이 오더라도 꽃을 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냥 시간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는 절호의 기회가 오더라도 창의성을 드러낼 수 없다.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의 기회를 만나자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기회를 기다리면서 쉼 없이 발아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창의성을 드러낼 기회를 맞는다. 그러나 누구나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아주 많다. 그런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하고 다방면으로 분산한다. 에너지를 다방면으로 분산하면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나팔꽃의 씨앗이 가뭄 덕분에 자신의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발아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장난감 놀이에 열중하는 어린애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듯이, 한 존재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다. 우리가 다양한 색깔의 나팔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오로지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나팔꽃의 노력 덕분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더욱이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삶은 장단으로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루살이과 하루살이의 삶이 고작 하루일지라도 수 천 년을 사는 나무보다 못하지 않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어떤 경우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는 순간 창의성을 드러낼 수 없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속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성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