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죽어서도 걱정이다

죽어서도 걱정이다

by 이규섭 시인 2017.07.07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 관(棺)은 허공에 떠 있다. 네 명의 왕이 청동관을 매고 있어 놀랐다. 살아서는 신대륙을 발견하려 떠돌았고, 죽어서는 유해가 이곳저곳 떠돌다가 허공에 떠 있는 주인공이 됐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네바 출신으로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신항로를 개척했다. 여왕이 타계하자 스페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1506년 스페인 남부 바야돌리드에서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콜럼버스는 죽은 지 3년 후 아들에 의해 세비야로 옮겨졌다. 1537년에 발견된 유언장에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고 싶지 않다. 내가 발견했던 히스파놀라 섬(현 도미니카)에 묻어 달라”고 했다. 유언에 따라 아들 디에고는 스페인 식민지 도미니카의 산토도밍고 성당으로 이장하여 안장했다.
1795년 프랑스가 이 지역을 점령하자 쿠바의 하바나로 다시 이장되었다. 1898년 쿠바가 독립하자 유골의 훼손을 우려하여 스페인으로 운구되어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됐다는 게 통설이다. 스페인 정부는 그의 유언을 지켜주려고 당시 스페인을 구성하는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왕들이 콜럼버스의 청동관을 어깨에 메고 땅을 밟지 않게 했다.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발상의 전환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반면, ‘악독한 범죄약탈자’라는 비난을 듣는다. 서양사에서는 위인으로 추앙받는 모험가이지만,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시각에서는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잔혹한 인물이다. 근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구절을 ‘신항로를 개척했다’는 말로 대체되어 평가의 변화를 실감한다.
미국에서는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대체하는 주 정부가 해마다 늘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여 1937년부터 매해 10월 둘째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퍼레이드 등 각종 행사를 펼쳐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를 130여 년간 지켜 온 콜럼버스 동상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역사에 맡긴다는 사후 평가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약 3년 만에 돌아온 윤달을 맞아 개장 화장하는 수요가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윤달은 신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손 없는 달’이라는 속설로 궂은일이나 수의를 미리 지어놓는 풍습이 전해져 왔다. 할머니 유골을 개장 화장하여 산소 옆 소나무 아래 수목장을 했다. 돌아가신 지 70여 년으로 할머니의 얼굴도 모르지만 자손 된 도리로 해마다 벌초를 했다. 부모님의 산소와 거리가 먼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불편을 감수해왔다.
종손 조카가 있으나 객지에 나가 사느라 산소를 돌볼 겨를이 없다. 내가 죽은 뒤 아들이 대를 이어 벌초를 해마다 한다는 보장도 없고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자식에게 묘 관리의 짐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다. 매장 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바뀌었지만 갈수록 편의성에 전도되어 조상을 기리는 미풍양속의 전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죽어선 어떻게 처리하라고 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