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길과 지뢰
자전거 길과 지뢰
by 한희철 목사 2017.07.05
지난 두 주간 저로서는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과 북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DMZ를 따라 열하루 동안 혼자 걷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같은 형제요 혈육이면서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 불신과 증오로 서로를 부라리며 바라보는 곳, 그 땅을 걸으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꼭 가져야지 마음속에 두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더 늦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그 길을 걸어서 가는 일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지만, 하루 약 35km씩을 걸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작정 떠났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쉬운 일, 떠나기 전 걷는 연습부터 해야 했습니다. 하루 두어 시간씩 며칠, 바쁜 일상에 쫓겨 충분한 연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날부터 발가락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등 적잖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폭우와 연신 울려대는 천둥과 번개, 마침내는 우박까지 쏟아져 내린 진부령을 걸어서 넘은 것이 무리였지만 말이지요. 몸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일정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그것 또한 이 나라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이라 생각하니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고성에 있는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했는데,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싶습니다. 명파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학교 운동장에 서서 어서 통일이 되어 이 학교가 한반도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마음껏 함께 뛰어놀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걸어서 내 나라 내 땅을 밟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폭우 속을, 많은 경우는 폭염경보가 내린 땡볕 아래를, 그런가 하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야 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걷다 보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나라 내 땅에 닿는 듯한 느낌이 찾아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만, 그중의 하나가 자전거 길과 지뢰 경고문이었습니다. DMZ를 따라 인근 마을을 걸었기 때문이겠지요, 더 이상의 접근을 금하는 철조망과 철조망에 내걸린 ‘지뢰’ 표지판을 자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뢰가 묻힌 곳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었습니다.
해안(펀치볼)을 벗어나 방산 쪽으로 가기 위해 돌산령 터널을 향할 때였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며 보니 좁은 도로 위에 그곳이 자전거 도로임을 알리는 표지가 파란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도로 바로 옆에는 붉은색 바탕의 역삼각형 철판에 지뢰라 적힌 글씨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파란색과 붉은색, 자전거 길과 지뢰, 우리가 사는 이 땅이 평화와 위험이 공존하고 있는 땅임을 대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가져야지 마음속에 두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더 늦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그 길을 걸어서 가는 일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지만, 하루 약 35km씩을 걸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작정 떠났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쉬운 일, 떠나기 전 걷는 연습부터 해야 했습니다. 하루 두어 시간씩 며칠, 바쁜 일상에 쫓겨 충분한 연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날부터 발가락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등 적잖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폭우와 연신 울려대는 천둥과 번개, 마침내는 우박까지 쏟아져 내린 진부령을 걸어서 넘은 것이 무리였지만 말이지요. 몸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일정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그것 또한 이 나라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이라 생각하니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고성에 있는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했는데,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싶습니다. 명파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학교 운동장에 서서 어서 통일이 되어 이 학교가 한반도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마음껏 함께 뛰어놀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걸어서 내 나라 내 땅을 밟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폭우 속을, 많은 경우는 폭염경보가 내린 땡볕 아래를, 그런가 하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야 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걷다 보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나라 내 땅에 닿는 듯한 느낌이 찾아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만, 그중의 하나가 자전거 길과 지뢰 경고문이었습니다. DMZ를 따라 인근 마을을 걸었기 때문이겠지요, 더 이상의 접근을 금하는 철조망과 철조망에 내걸린 ‘지뢰’ 표지판을 자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뢰가 묻힌 곳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었습니다.
해안(펀치볼)을 벗어나 방산 쪽으로 가기 위해 돌산령 터널을 향할 때였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며 보니 좁은 도로 위에 그곳이 자전거 도로임을 알리는 표지가 파란색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도로 바로 옆에는 붉은색 바탕의 역삼각형 철판에 지뢰라 적힌 글씨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파란색과 붉은색, 자전거 길과 지뢰, 우리가 사는 이 땅이 평화와 위험이 공존하고 있는 땅임을 대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