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중용
by 김민정 박사 2017.07.03
아찔한 날 선 삶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낫을 갈 듯 살아오신 아버님의 팔순 생애
등 굽어 푹 패인 가슴 허연 뼈로 누웠다
- 균형을 잘 잡아야 날이 안 넘는 겨
갈무린 기도문인 양 깃을 치며 솟는 햇살
하늘빛 흥건한 뼛가루 목숨인 양 뜨겁다.
가슴 마구 들이치던 내 유년의 마른 바람
- 물을 자주 뿌려야 날이 안 상하는 겨
촉촉한 귓전의 말씀 눈물 속에 날이 선다.
- 권갑하 「숫돌」 전문
인생을 살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낫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낫을 많이 사용하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나무를 베거나 할 때 사용하려면 낫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낫이 잘 들게 하기 위해서는 숫돌에다 날카롭게 갈아야만 했다. 그 낫을 갈 때 너무 많이 갈아도 안 되고, 물을 자주 뿌려 주어야 한다는 거다. “균형을 잘 잡아야 날이 안 넘는 겨”라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지혜는 균형을 잘 잡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이것을 중용이라 한다. 어떠한 일에서나 사실과 진리에 알맞도록 하여 편향, 편중하지 않는 것을 중용이라 하는데,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숫돌에 낫을 갈면서 너무 많이 갈아도 안 되고, 너무 한 쪽만 갈아도 안 되고, 적당히 균형을 맞춰서 갈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화자는 세상살이에서의 균형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저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와 자신을 지켜가는 일, 그러면서도 세상과 어울리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 중용을 얼마나 현명하게 지키며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정과 일과 대인관계에 모두 중용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너무 지나치지 않게, 너무 부족하거나 소홀하지 않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평화와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첫째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위의 시 내용 중 낫을 잘 가는 방법 중에 “물을 자주 뿌려야 날이 안 상하는 겨.”라는 말이 나온다. 잘 드는 낫을 만드는 방법으로 낫을 갈 때 물을 자주 뿌려주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단체의 화합에도, 다른 일에도 적용된다.
낫을 갈며 자주 물을 뿌려주듯, 아는 사람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관심을 끊지 않고 자주 연락하며 지낼 때 인간관계도 돈독하게 이어진다. 어느 단체든, 일이든 늘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할 때 협동이 잘 되고 오래 지속되면서 계속 발전해 갈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는 “흐르는 물은 섞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또한 흐르는 물은 잘 얼지도 않는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을 때가 문제이다. 즉 정체되어 있을 때 썩게 되고 악취도 나게 되는 것이다. 어디 물 뿐이겠는가? 모든 자연적인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가며 변화하듯, 그 변화에 맞추어 생각의 흐름이 중심을 잡고 중용을 지키며 함께 흘러가는 현명함이 삶에서는 순간순간 필요하다.
낫을 갈 듯 살아오신 아버님의 팔순 생애
등 굽어 푹 패인 가슴 허연 뼈로 누웠다
- 균형을 잘 잡아야 날이 안 넘는 겨
갈무린 기도문인 양 깃을 치며 솟는 햇살
하늘빛 흥건한 뼛가루 목숨인 양 뜨겁다.
가슴 마구 들이치던 내 유년의 마른 바람
- 물을 자주 뿌려야 날이 안 상하는 겨
촉촉한 귓전의 말씀 눈물 속에 날이 선다.
- 권갑하 「숫돌」 전문
인생을 살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낫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낫을 많이 사용하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나무를 베거나 할 때 사용하려면 낫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낫이 잘 들게 하기 위해서는 숫돌에다 날카롭게 갈아야만 했다. 그 낫을 갈 때 너무 많이 갈아도 안 되고, 물을 자주 뿌려 주어야 한다는 거다. “균형을 잘 잡아야 날이 안 넘는 겨”라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지혜는 균형을 잘 잡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이것을 중용이라 한다. 어떠한 일에서나 사실과 진리에 알맞도록 하여 편향, 편중하지 않는 것을 중용이라 하는데,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숫돌에 낫을 갈면서 너무 많이 갈아도 안 되고, 너무 한 쪽만 갈아도 안 되고, 적당히 균형을 맞춰서 갈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화자는 세상살이에서의 균형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저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와 자신을 지켜가는 일, 그러면서도 세상과 어울리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 중용을 얼마나 현명하게 지키며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정과 일과 대인관계에 모두 중용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너무 지나치지 않게, 너무 부족하거나 소홀하지 않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평화와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첫째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위의 시 내용 중 낫을 잘 가는 방법 중에 “물을 자주 뿌려야 날이 안 상하는 겨.”라는 말이 나온다. 잘 드는 낫을 만드는 방법으로 낫을 갈 때 물을 자주 뿌려주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단체의 화합에도, 다른 일에도 적용된다.
낫을 갈며 자주 물을 뿌려주듯, 아는 사람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관심을 끊지 않고 자주 연락하며 지낼 때 인간관계도 돈독하게 이어진다. 어느 단체든, 일이든 늘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할 때 협동이 잘 되고 오래 지속되면서 계속 발전해 갈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는 “흐르는 물은 섞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또한 흐르는 물은 잘 얼지도 않는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을 때가 문제이다. 즉 정체되어 있을 때 썩게 되고 악취도 나게 되는 것이다. 어디 물 뿐이겠는가? 모든 자연적인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가며 변화하듯, 그 변화에 맞추어 생각의 흐름이 중심을 잡고 중용을 지키며 함께 흘러가는 현명함이 삶에서는 순간순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