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꽁보리밥의 추억

꽁보리밥의 추억

by 이규섭 시인 2017.06.30

보리는 새해 첫 햇곡식이다. 보리타작이 끝나고 도정을 하면 아버지는 미역을 사 오셨다. 보리밥에 왜 뜨거운 미역국일까. 그땐 몰랐다. 탱글탱글 따로 노는 꽁보리밥 낱알을 부드럽게 넘겨 배탈 나지 말라는 웅심 깊은 뜻이 담겼다.
마당 귀퉁이에 모깃불 피우고 들마루에 저녁상을 편다. 볼이 넓은 양은그릇에 보리밥을 푸고 그 위에 열무를 얹고 애호박과 풋고추를 넣어 끓인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꽁보리밥은 꿀밥이다. 밥 위에 얹어 찐 호박잎에 싸 먹어도 담백하다. 부추무침, 무생채, 겉절이는 보리밥과 궁합이 맞다. 남은 보리밥은 대소쿠리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마루나 부엌 앞 천장에 매달았다. 점심때 우물에서 떠온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면 시장이 반찬이다.

‘보릿고개 밑에서/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내가 울고 있다.’ <황금찬 시 ‘보릿고개’ 중에서>

배가 고파 가족 모두가 울고 있다. 배고픈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하늘이 ‘한 알의 보리 알’로 보인다. 배고픈 아이가 넘어야 할 고개는 ‘해발 구천 미터’만큼 높아 보인다. 예전엔 보릿고개를 춘궁기(春窮期), 맥령기(麥嶺期)라고 했으나 요즘 아이들에겐 원시시대 같은 이야기다.
춘궁기가 되면 시골아이들은 도시락에 보리개떡을 싸 가지고 학교에 갔다. 보리개떡은 보리를 찧을 때 보리등겨를 체로 쳐서 나온 가루로 만든다. 대충 주물러 빚은 개떡은 온기가 가시면 볼썽사납게 굳어버린다. 못생기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떡이지만 허기진 배를 부드럽게 채워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배에서 ‘꼬르륵’ 허기진 신호가 온다. 아이들은 앞다퉈 ‘보리 끄스럼’에 나선다. 청보리 이삭을 잘라 모닥불에 구운 뒤 손바닥으로 비비고 껍질을 후후 불어낸다. 말랑말랑한 풋 알갱이는 풋풋하고 달착지근하게 혀끝을 감친다. 검댕이 묻은 얼굴과 입술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며 웃다가 멀리서 주인이 소리치면 줄행랑치던 그때 그 시절의 아픔도 아릿한 추억이다. 어른들은 풋바심으로 덜 익은 보리 모가지를 잘라다 보리죽을 끓여 허기를 채웠다.
청보리가 허리춤만큼 자라고 종달새가 지지배배 춘정을 희롱할 때면 산비둘기만 보리밭에 알을 낳는 게 아니다. 시골 젊은이들의 은밀한 밀애 장소가 보리밭이다. 훈풍에도 이리저리 휩쓸리는 보리이랑은 서정과 욕정을 불러일으킨 빛바랜 시대의 풍속도다.
망종 무렵이면 보리가 누릇누릇 익는다. 보리타작은 벼 타작보다 힘들다. 보릿단을 굵은 새끼로 묶어 커다란 돌에 내리쳐서 털었다. 까끄라기가 목덜미와 사타구니로 파고들어 깔끄럽다. ‘혀는 칼보다 깔끄럽다’는 ‘설망어검(舌芒於劍)’은 깔끄러운 보리이삭과 잘 어울리는 경구다. 윤오월 초하루, 산소 일을 하러 고향에 들르니 문득 꽁보리밥에 담긴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