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by 권영상 작가 2017.06.29
며칠 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는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레고리우스는 크게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해 보았다.
스위스 태생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앞부분이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의 문헌 해석력은 완벽하고 치밀하다. 그렇듯 그의 삶도 실수를 용납지 못할 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그에 걸맞게 그의 별명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란 라틴어 문두스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전혀 예상치 못한 실수를 했다.
그것은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사건 때문이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그레고리우스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다리 난간을 잡고 올라가 강물로 뛰어내리려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우산을 내던지고 달려가 그를 붙잡고 만류했다. 그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여인이었다. 그 일로 그레고리우스는 출근 시간을 넘기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수업 시작종은 이미 오래전에 울렸던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자, 그는 그녀의 것일지도 모르는 전화번호를 들고 학교를 뛰쳐나간다.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정확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확한 문헌 해석으로 제자들은 물론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경의와 존경심의 찬사를 받는 그가 직장을 버렸다.
이제 그에게 찬사와 경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귓가에 남겨놓고 간 포르투갈어의 아름다운 매혹이 그를 자극할 뿐이다. 제네바에서 열차로 26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 시간 밖의 리스본. 그는 확실하지 않은 이 미래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라는 것밖에 모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책을 읽고 있는 내 가슴이 그레고리우스처럼 두근거리고 설렌다. 그가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신념을 팽개쳐본 적이 없다. 밥벌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저 틀에 박히고 남루해질 대로 남루해진 일상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짓누르는 삶에 순종하는 편이었다. 잘 길들여진 개처럼 충실했다. 아침 출근이 늦으면 눈치 보일까 봐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 마른 눈을 비비며 달려갔고, 회식 자리를 거부하지 못했다. 남들이 집을 사고, 차를 살 때도 뒤질세라 대출을 받아 그 대출금에 허덕대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인생인 줄 알았다. 낯선 컴퓨터의 등장으로 고통받는 나를 달래며 간신히 직장을 마쳤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번도 일상을 내팽개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리석었고, 용기가 없었고, 나를 사랑할 줄 몰랐다.
나는 소설 속 그레고리우스를 이해한다. 우리는 얼마나 가혹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 자신보다는 늘 타인의 눈을 의식하거나 견고한 세속의 틀에 자신을 가두어놓고 숨 막히는 삶을 산다. 부디 리스본으로 떠나간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이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스위스 태생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앞부분이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의 문헌 해석력은 완벽하고 치밀하다. 그렇듯 그의 삶도 실수를 용납지 못할 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그에 걸맞게 그의 별명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란 라틴어 문두스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전혀 예상치 못한 실수를 했다.
그것은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사건 때문이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그레고리우스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다리 난간을 잡고 올라가 강물로 뛰어내리려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우산을 내던지고 달려가 그를 붙잡고 만류했다. 그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여인이었다. 그 일로 그레고리우스는 출근 시간을 넘기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수업 시작종은 이미 오래전에 울렸던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자, 그는 그녀의 것일지도 모르는 전화번호를 들고 학교를 뛰쳐나간다.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정확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확한 문헌 해석으로 제자들은 물론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경의와 존경심의 찬사를 받는 그가 직장을 버렸다.
이제 그에게 찬사와 경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귓가에 남겨놓고 간 포르투갈어의 아름다운 매혹이 그를 자극할 뿐이다. 제네바에서 열차로 26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 시간 밖의 리스본. 그는 확실하지 않은 이 미래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라는 것밖에 모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책을 읽고 있는 내 가슴이 그레고리우스처럼 두근거리고 설렌다. 그가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신념을 팽개쳐본 적이 없다. 밥벌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저 틀에 박히고 남루해질 대로 남루해진 일상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짓누르는 삶에 순종하는 편이었다. 잘 길들여진 개처럼 충실했다. 아침 출근이 늦으면 눈치 보일까 봐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 마른 눈을 비비며 달려갔고, 회식 자리를 거부하지 못했다. 남들이 집을 사고, 차를 살 때도 뒤질세라 대출을 받아 그 대출금에 허덕대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고 그게 인생인 줄 알았다. 낯선 컴퓨터의 등장으로 고통받는 나를 달래며 간신히 직장을 마쳤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번도 일상을 내팽개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리석었고, 용기가 없었고, 나를 사랑할 줄 몰랐다.
나는 소설 속 그레고리우스를 이해한다. 우리는 얼마나 가혹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 자신보다는 늘 타인의 눈을 의식하거나 견고한 세속의 틀에 자신을 가두어놓고 숨 막히는 삶을 산다. 부디 리스본으로 떠나간 그레고리우스의 인생이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오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