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을 내려놓기 그리고 잠시 스마트폰 끄기
잠시 일을 내려놓기 그리고 잠시 스마트폰 끄기
by 정운 스님 2017.06.27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핵가족 시대, 그리고 가족도 뿔뿔이 개인의 일로 바쁜 시대를 살아간다. 한 번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유명한 뮤지컬 K배우의 경험담 이야기다. 이 배우는 20여 년을 정상급을 달리는 배우이다. 결혼해 딸을 낳고도, 계속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너무 바빠서 육아에 전념할 수 없어 딸은 아빠와 할머니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다. K배우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7살이 되어도 엄마를 낯설어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이 유치원에서 발표회가 있는 날, K배우가 유치원에 갔다고 한다. 배우는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곳으로 가서 딸에게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딸 친구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나타나자, ‘네 엄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딸아이의 답변이 여느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우리 엄마 아니야, K 배우야”
아이는 엄마 성과 이름까지 거론하며, ‘배우’라는 말을 사용했지, 엄마라는 칭호를 쓰지 않은 것이다. 배우는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워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배역 맡는 일을 조금씩 줄였고, 집에 들어가면 대본 보는 일을 하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철없는 아이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K배우’라는 소리에 익숙했지, 엄마라는 이미지조차도 마음속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K배우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어넘길 이야기지만, 커리어 엄마들의 아픈 진실이 담겨 있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수여일 전에 신문에서 읽은 변호사 칼럼이 생각났다. 이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서 차별받는 이주 여성을 변호하는 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변호사는 남편과 두 딸이 있다. 그녀는 사회생활로 매우 바쁘지만 집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 단 한 가지였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면 변호사가 아닌 엄마로서, 부인으로 완전 변신한다는 것이다. 곧 그녀는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스마트폰을 끄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곧 다음날 출근하면서 폰을 켜며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개인주의 시대가 되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기계 발달과 더불어 가족의 해체는 가속도를 내고 있다. 가족 이야기가 아니어도 폰으로 인해 인간관계조차 소원해진다. 학교 교정에서도 보면, 학생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계속 폰을 확인하고 식사가 끝나도 각자 폰을 한다. 카페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함께 자리할 뿐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세계를 살아간다.
필자가 하고자 했던 가정 이야기로 돌아가자. 가정에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족이 식사하는 도중에도 각자, 특히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가족이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잠시 폰을 끄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면 이보다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인간이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지인이나 가족과 함께할 때는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잠시 스마트폰을 끄자. 사람과 사람의 만남,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따스한 감정의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자.
유명한 뮤지컬 K배우의 경험담 이야기다. 이 배우는 20여 년을 정상급을 달리는 배우이다. 결혼해 딸을 낳고도, 계속 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너무 바빠서 육아에 전념할 수 없어 딸은 아빠와 할머니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다. K배우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7살이 되어도 엄마를 낯설어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이 유치원에서 발표회가 있는 날, K배우가 유치원에 갔다고 한다. 배우는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곳으로 가서 딸에게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딸 친구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나타나자, ‘네 엄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딸아이의 답변이 여느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우리 엄마 아니야, K 배우야”
아이는 엄마 성과 이름까지 거론하며, ‘배우’라는 말을 사용했지, 엄마라는 칭호를 쓰지 않은 것이다. 배우는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워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배역 맡는 일을 조금씩 줄였고, 집에 들어가면 대본 보는 일을 하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철없는 아이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K배우’라는 소리에 익숙했지, 엄마라는 이미지조차도 마음속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K배우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어넘길 이야기지만, 커리어 엄마들의 아픈 진실이 담겨 있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수여일 전에 신문에서 읽은 변호사 칼럼이 생각났다. 이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서 차별받는 이주 여성을 변호하는 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변호사는 남편과 두 딸이 있다. 그녀는 사회생활로 매우 바쁘지만 집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 단 한 가지였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면 변호사가 아닌 엄마로서, 부인으로 완전 변신한다는 것이다. 곧 그녀는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스마트폰을 끄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곧 다음날 출근하면서 폰을 켜며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개인주의 시대가 되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기계 발달과 더불어 가족의 해체는 가속도를 내고 있다. 가족 이야기가 아니어도 폰으로 인해 인간관계조차 소원해진다. 학교 교정에서도 보면, 학생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계속 폰을 확인하고 식사가 끝나도 각자 폰을 한다. 카페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함께 자리할 뿐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세계를 살아간다.
필자가 하고자 했던 가정 이야기로 돌아가자. 가정에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족이 식사하는 도중에도 각자, 특히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가족이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잠시 폰을 끄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면 이보다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인간이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지인이나 가족과 함께할 때는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잠시 스마트폰을 끄자. 사람과 사람의 만남,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따스한 감정의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