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와 치유
메타세쿼이아와 치유
by 강판권 교수 2017.06.26
한 그루의 나무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같다. 실외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물론 실내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나무와 만난다. 사람들은 나무와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마음의 평온은 가장 뛰어난 치유다. 중국 당나라 때 마조도일(馬祖道一)이 ‘평상심이 곧 도(道)’라고 말했듯이, 일상의 평온은 인간이 가장 바라는 바다. 그러나 현대인은 늘 불안과 초조 속에서 일상을 맞는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찾는 방법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추천한다.
얼마 전 집 근처 병원 앞에 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이하 ‘메타’)를 만나러 갔다. 그곳의 메타는 내가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나무지만 지날 때마다 나를 유혹한다. 그만큼 이곳의 한 그루 메타는 매력적이다. 이곳의 메타는 밑동부터 나무 끝까지 아주 많은 가지가 있어서 바라보면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답다. 주변에서 만나는 메타는 대부분 밑동에서 어느 정도 줄기 위로 올라가야 가지를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의 메타를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했다. 사진을 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도 이곳 메타를 촬영했지만 다시 촬영하는 것은 나무의 변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촬영하면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곳 메타를 찍고 있으니 밖에 나와 휴식하던 병원의 환자들이 나더러 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메타 사진을 찍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환자분이 “그 나무 참 예쁘죠?”라고 물었다. 나는 환자분의 얘길 듣는 순간, 병원의 환자분들이 메타를 통해 치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나는 그분에게 다시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다소 쑥스러운 듯이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메타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앞의 메타는 도심의 한 그루 나무도 사람들에게 치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무심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마주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사람들에게 위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늘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항상 옆에 있길 바란다. 특히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입을 때 더욱더 자신을 지켜 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늘 누군가의 옆에 있지 못한다. 나무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나무는 사람을 속 썩이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나무만큼 사람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존재도 드물다.
사람들이 나무를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에 늘 변함없이 서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변함없이 하는 존재라서 상대방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든 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만약 나무가 변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한다면 결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무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대상일 수 있다.
얼마 전 집 근처 병원 앞에 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이하 ‘메타’)를 만나러 갔다. 그곳의 메타는 내가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나무지만 지날 때마다 나를 유혹한다. 그만큼 이곳의 한 그루 메타는 매력적이다. 이곳의 메타는 밑동부터 나무 끝까지 아주 많은 가지가 있어서 바라보면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답다. 주변에서 만나는 메타는 대부분 밑동에서 어느 정도 줄기 위로 올라가야 가지를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의 메타를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했다. 사진을 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도 이곳 메타를 촬영했지만 다시 촬영하는 것은 나무의 변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촬영하면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곳 메타를 찍고 있으니 밖에 나와 휴식하던 병원의 환자들이 나더러 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메타 사진을 찍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환자분이 “그 나무 참 예쁘죠?”라고 물었다. 나는 환자분의 얘길 듣는 순간, 병원의 환자분들이 메타를 통해 치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나는 그분에게 다시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다소 쑥스러운 듯이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메타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앞의 메타는 도심의 한 그루 나무도 사람들에게 치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무심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마주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사람들에게 위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늘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항상 옆에 있길 바란다. 특히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입을 때 더욱더 자신을 지켜 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사람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늘 누군가의 옆에 있지 못한다. 나무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나무는 사람을 속 썩이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나무만큼 사람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존재도 드물다.
사람들이 나무를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에 늘 변함없이 서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변함없이 하는 존재라서 상대방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든 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만약 나무가 변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한다면 결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무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대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