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섬뜩한 현수막의 효과

섬뜩한 현수막의 효과

by 이규섭 시인 2017.06.23

쓰레기를 분류해 내놓은 일은 내 몫이다. 식구는 단출해도 음식쓰레기와 일반폐기물은 격일로 버릴 만큼 나온다. 재활용품은 열흘이나 보름쯤 지나면 작은 쌀 포대가 찬다. 음식쓰레기 봉투를 단독주택 대문 앞에 내놓으면 고양이가 이빨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할퀴어 너덜너덜해지기 일쑤다. 수거 다음 날이면 물청소를 해야 할 정도로 지저분하다.
더 지저분한 건 얌체족들이 검은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담아 집 앞에 몰래 버리는 행위다. 악취가 풍기고 짜증난다. 이웃 세입자들의 소행으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찾으려면 쓰레기를 뒤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니 포기하고 만다. 그대로 두면 보기 흉하고 또 다른 쓰레기들이 쌓여 울며 겨자 먹기로 치우게 된다. 주택가 골목 모퉁이 전봇대 아래는 늘 잡동사니 쓰레기가 쌓여 볼썽사납다. 구청과 주민들이 붙여놓은 경고판이 무색하다.
어느 날 해거름 부근에 세 들어 사는 중국 동포가 골목 하수구 틈새로 쓰레기를 쑤셔 넣는다.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더니 “비 오면 씻겨내려 가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지난해 중국 동포들의 집단 거주지역인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지 말라는 이색 현수막을 내 걸어 효과를 봤다고 한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이 죄는 자식 대까지 불운하게 만듭니다’라는 내용이다. ‘무단투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선행을 쌓는 일입니다. 이 선행은 자식 대에 정승·판서가 나오는 일입니다’는 현수막도 함께 걸었다.
이 지역은 인구의 68%가 외국인으로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산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병기(倂記)한 현수막은 구로 구청에 근무하는 중국 동포 직원의 조언을 반영했다고 한다. 자식 문제에 민감한 조선족들의 감성을 자극한 덕에 무단투기가 한 달 만에 크게 줄었다고 한다.
쓰레기 무단투기가 줄자 구로구는 관내 전 지역에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내 걸었다. 주민들은 “내용이 너무 섬뜩하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은 현수막을 철거한 뒤 ‘잠깐! 여기는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평범한 내용의 표지판으로 바꿨다. 중국 동포들이 거주하는 다가구주택에 일반 쓰레기통과 음식물 쓰레기통을 배부하고 중국 동포를 다문화 명예통장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외국인 대상 종량제 봉투 사용 등 쓰레기 배출방법 홍보에 나서는 등 쓰레기 무단투기와의 전쟁을 벌인다.
다른 지자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쓰레기 무단투기자를 고발하면 보상해주는 ‘쓰파라치’ 제도를 도입하고 CCTV를 늘리며 범칙금을 부과해도 불법 무단투기는 좀체 사라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다. 쓰레기를 버리는 공터에 화단을 만든 지자체도 있다. 생활폐기물 종량제를 도입한 지 올해로 22년째. 스위스와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여 쓰레기 분리수거를 생활화하는 데 기여했다.
쓰레기 발생량은 종량제 시행 전에 비해 크게 줄었으나 양심을 몰래 버리는 쓰레기 무단투기는 여전하다. 백약이 무효라고 방치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안 되면 ‘섬뜩한 현수막’을 다시 내 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