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핍에 견디는 법을 배워야
내핍에 견디는 법을 배워야
by 한희철 목사 2017.06.21
벌써 30년 전의 일이네요, 강원도의 한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 마을은 큰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외진 마을이었고, 아직 예배당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창립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인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첫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세 평정도 되는 작은 방이 예배당이었습니다.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흙벽돌로 된 사랑방이었습니다. 이웃교회에서 전해준 작은 제단을 놓으니 방의 절반쯤을 차지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교우들이 일을 하다말고 달려와 예배에 참여하고는 했습니다. 당시에는 동네가 품앗이로 일을 했는데, 새참 시간에 새참을 먹는 대신 달려왔던 것이지요. 덕분에 예배 시간은 새참 먹을 시간쯤으로 정해졌습니다. 교우들은 예배를 드리다가 피곤에 못 이겨 졸기도 하고, 때로는 코피를 쏟기도 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마치고 처음 시작하는 목회,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열정도 많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교우라야 몇 분 안 되는 할머니들이었고, 재정적인 뒷받침은 불가능했습니다.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하는 것보다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으로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아픔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무렵 한 선배가 들려준 말이 있었습니다.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니까 100m를 달리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어쩌면 선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조급해하는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열악한 현실 앞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며 낙담하고 있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선배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락없이 땅끝이라고 여겨지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내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농촌목회는 마라톤은 마라톤이되 이상한 마라톤이었습니다. 대개의 마라톤은 다 함께 출발을 해서 한동안은 몸을 부딪치며 같이 달립니다. 길가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기도 하고, 지칠 만한 곳에는 물을 비치해 두기도 합니다. 뛰는 사람이 코스를 잃지 않도록 도로 곳곳에 표지가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농촌목회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박수 소리도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지칠 때 마실 수 있는 물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코스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을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요.
‘말을 타고 멀리 가려는 자는 말을 배불리 먹일 것이 아니라, 말이 내핍에 견디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머리를 끄덕이게 됩니다.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인 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흘에 걸어갈 길을 하루에 가서 열흘 동안을 누워 있으면 안 됩니다. 조급해하고 초조해하는 마음일랑 내려놓고, 내핍에 견디도록 나를 지키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일이 우리 삶에 필요할지 모릅니다.
세 평정도 되는 작은 방이 예배당이었습니다.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흙벽돌로 된 사랑방이었습니다. 이웃교회에서 전해준 작은 제단을 놓으니 방의 절반쯤을 차지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교우들이 일을 하다말고 달려와 예배에 참여하고는 했습니다. 당시에는 동네가 품앗이로 일을 했는데, 새참 시간에 새참을 먹는 대신 달려왔던 것이지요. 덕분에 예배 시간은 새참 먹을 시간쯤으로 정해졌습니다. 교우들은 예배를 드리다가 피곤에 못 이겨 졸기도 하고, 때로는 코피를 쏟기도 했습니다.
신학 공부를 마치고 처음 시작하는 목회,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열정도 많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교우라야 몇 분 안 되는 할머니들이었고, 재정적인 뒷받침은 불가능했습니다.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하는 것보다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으로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아픔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무렵 한 선배가 들려준 말이 있었습니다.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니까 100m를 달리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어쩌면 선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조급해하는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열악한 현실 앞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며 낙담하고 있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선배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락없이 땅끝이라고 여겨지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내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농촌목회는 마라톤은 마라톤이되 이상한 마라톤이었습니다. 대개의 마라톤은 다 함께 출발을 해서 한동안은 몸을 부딪치며 같이 달립니다. 길가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기도 하고, 지칠 만한 곳에는 물을 비치해 두기도 합니다. 뛰는 사람이 코스를 잃지 않도록 도로 곳곳에 표지가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농촌목회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박수 소리도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지칠 때 마실 수 있는 물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코스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을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요.
‘말을 타고 멀리 가려는 자는 말을 배불리 먹일 것이 아니라, 말이 내핍에 견디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머리를 끄덕이게 됩니다.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인 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흘에 걸어갈 길을 하루에 가서 열흘 동안을 누워 있으면 안 됩니다. 조급해하고 초조해하는 마음일랑 내려놓고, 내핍에 견디도록 나를 지키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일이 우리 삶에 필요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