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아까시나무 꽃길

아까시나무 꽃길

by 강판권 교수 2017.06.13

콩과의 아까시나무 꽃은 우리나라 벌꿀 생산의 최대 원료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꿀도 아까시나무 꽃에서 얻은 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까시나무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아까시나무에 대한 테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주변 지역은 전국에서도 아까시나무가 아주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아까시나무의 꽃이 필 즈음에 산에 오르면 아까시나무 꽃에서 날개짓하는 벌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더욱이 아까시나무의 꽃향기는 코를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6월의 산에는 나무의 꽃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오랜만에 산길에서 아까시나무 꽃길을 걸었다. 산 능선 주변에 살고 있는 아까시나무의 낙화가 오솔길을 주단처럼 장식했다. 내가 사는 인근 산에서는 그 어떤 나무도 꽃길을 만들지 않는다.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소나무의 꽃은 바람으로 수정하기 때문에 결코 꽃길을 만들지 못한다. 소나무 다음으로 많이 살고 있는 참나뭇과의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등의 꽃도 꽃길을 만들지 못한다. 오솔길에 드문드문 살고 있는 가죽나무의 노란 꽃은 간혹 나무 밑의 오솔길을 예쁘게 단장하지만 아까시나무 꽃처럼 꽃길을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아까시나무는 내가 사는 산 능선에서 유일하게 꽃길을 만든다.
나는 산에 오르면 정상 근처의 의자에 늘 앉아 잠깐 쉰다. 내가 앉아 쉬는 곳은 반송과 반송 사이에 의자가 있어서 아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쉬다가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긴 후 아까시나무의 줄기를 일정 부분 벗겨놓은 현장을 발견했다. 껍질을 벗긴 아까시나무는 소나무 옆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소나무를 살린다는 이유로 아까시나무의 줄기를 벗긴 것이 분명했다. 아까시나무는 물관세포가 껍질 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벗겨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는다. 나는 아까시나무의 껍질을 벗긴 사람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그런 만행을 저지는 사람이 누군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 1960-70년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유독 소나무에 집착한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송충이를 잡았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자주 송충이잡이에 동원되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민둥산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전국적으로 소나뭇과의 리기다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이 과정은 곧 아까시나무의 수난이었다. 그래서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까시나무만 보면 원수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결코 소나무의 적이 아니다.
아까시나무의 꽃으로 만든 꿀을 즐겨 먹으면서 아까시나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한 태도다. 아까시나무의 꽃으로 만든 꿀을 귀한 사람에게 선물하면서 아까시나무를 죽이는 것은 극악무도한 테러다. 아까시나무처럼 생명체를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사람은 지금 유럽에서 저지르고 있는 테러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종종 무의식중에 테러리스트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평소 생명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성찰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