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매운맛처럼 화끈하게

매운맛처럼 화끈하게

by 이규섭 시인 2017.06.02

한국인들의 성격은 일본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솔직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편이다. 친하다 싶으면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일본인들은 신중한 편인 데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친한 친구라도 예의를 갖춘다. 금방 달아오르는 온돌문화와 은근하고 오래가는 ‘코다쓰 문화(일본식 담요 테이블)’와 비교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원형질은 열정과 단결이다. 교육열은 뜨겁다 못해 극성스럽다. 사교육비는 OECD 평균의 6배 넘는다. 냄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단점도 있다. 화끈하고 불같은 성격이 많아 뭐든지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걷고 자판기 버튼을 눌러놓고 손을 집어넣어 컵을 잡고 기다릴 정도로 급하다. 우유부단한 성격보다는 급한 사람이 진취적이다. 혈연, 지연, 학연에 유난스럽게 집착한다. 촛불집회의 응집력은 시민혁명의 단초가 됐다.
음식문화도 열로써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을 즐긴다. 한여름 뜨거운 삼계탕을 땀 뻘뻘 흘리며 먹으면서 “시원하다”는 게 우리 민족이다. 한국 음식의 특징은 맵고 짜고 입안이 얼얼하도록 화끈하다. 매운탕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고 고추장까지 푼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간장에 고추냉이(와사비)를 듬뿍 풀어 콧속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찍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화끈한 한국인들의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 고추를 상징하는 붉을 ‘홍(紅)’과 매운맛을 뜻하는 ‘신(辛)’이나, 뜨거운 ‘불’과 ‘화로’를 넣은 매운맛 음식점 간판이 늘었다. 불 닭, 불 삼겹, 불오징어, 불 오뎅, 불 주꾸미 등 자극적인 메뉴가 많아졌다. 치킨 업체의 매운맛을 강조하는 상표경쟁도 치열하다. ‘리얼 핫 양념치킨’, ‘쇼킹 핫 양념치킨’, ‘핫 데블 치킨’ 등은 듣기만 해도 입안이 얼얼해진다.
최근에는 ‘불 냉면’에 ‘핵불닭볶음면’까지 나왔다. 그뿐 아니라 매운맛 나는 도넛, 캡사이신 맛 사탕, 겨자 맛 쿠키도 나왔으니 매운맛 열풍 시대다. 미각은 짜릿한 자극을 받게 되면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매운맛이 더 매워지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매운맛은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중독성이 강한 편이어서 단골손님 확보가 쉽다고 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운맛 마니아까지 생긴 지도 오래됐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매운 음식의 수요는 늘어난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나 샐러리맨들은 매운 안주에 톡 쏘는 소주로 위안을 삼는다.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풀고 싶은 사회심리학적 요인도 작용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고 나면 한결 가뿐한 느낌이 든다. 화끈하고 짜릿한 쾌감과 함께 묵은 감정이 배출되고 정신이 맑아진다. 매운맛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매운맛은 항암작용을 하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뒷받침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뜨겁고 매운맛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기분 전환도 되고 팍팍한 삶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매운맛 같은 화끈한 열정과 도전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게 세상사는 평범한 이치다. 오늘 매운맛 좀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