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낡은 구두가 주는 고마움

낡은 구두가 주는 고마움

by 한희철 목사 2017.05.31

깊은 어둠 속에서 물을 길어 환한데 쏟는 두레박처럼 살았던 사람, 정작 자신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살았지만 빛나는 작품을 남겼던 사람, 그래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 <구두>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면 그림 속의 구두는 구두라기보다는 군화처럼 보입니다. 낡을 만큼 낡고 굳어질 대로 굳어진 구두는 더없이 볼품없어 보입니다. 땀과 흙과 고된 노동에 찌들대로 찌들어 주인의 발을 편하게 해 줄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무렇게나 막 풀어놓은 구두끈은 일을 마치고도 편히 쉬지 못하는 구두 주인의 형편을 헤아리게 합니다. 생의 전쟁터에서 하루라는 전쟁을 마친 병사의 지친 표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위험과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주인을 지켜주는 억센 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흐의 <구두>를 보고 있으면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 날품팔이 막노동꾼,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 가장들이 떠오른다는 한 시인의 말에 공감합니다. 울고 싶어도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 눈물이 솟구쳐 오르면 기껏해야 소주잔이나 기울이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떠오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어디 그것이 구두뿐이겠습니까만, 눈여겨보면 낡은 구두 한 켤레에도 생각 이상의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신는 사람의 삶과 그가 보내는 시간, 그가 하는 일,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마음 등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셈이지요.
최근에 사람들이 주목을 받은 구두가 있었습니다.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가 그것입니다. 대통령의 구두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단순히 대통령이 신은 구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값비싼 구두였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의 구두는 낡은 상태였는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구두를 만든 회사의 브랜드 때문이었습니다. 신을 만큼 신어 허름해 보이는 구두 안에는 ‘AGIO’(아지오)라는 브랜드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낯선 브랜드 ‘아지오’라는 구두는 '구두 만드는 풍경'에서 제작한 수제 구두였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은 바로 그 구두를 만든 '구두 만드는 풍경'이 청각장애인이 모여 구두를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두 만드는 풍경’은 청각장애인의 자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사회적 기업인데, 안타깝게도 지난 2013년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도 그 구두를 홍보하기 위해 광고에 나섰고, 출연료로는 갈색 구두 한 켤레였다고 밝힌 바가 있던 바로 그 구두지요.
밑바닥이 닳고 찢어질 만큼 오래 신은 대통령의 구두는 청각장애인이 손으로 만든 구두였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신고, 천사는 아지오를 신는다,”는 말이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대통령의 낡은 구두는 더없는 고마움과 신뢰로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