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정동진 그리고 정남진, 정서진

정동진 그리고 정남진, 정서진

by 이규섭 시인 2017.05.26

“정남진 해상낚시공원에 가면 감성돔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낚시꾼들은 피라미를 놓쳐도 월척급이라 우기는 허풍 기질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이 가는 것은 전남 장흥군이 전국 최초로 해양낚시공원을 조성하여 어촌계에 위탁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바다 위 해상펜션에 묶으며 낚싯줄을 드리우니 낚을 확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해상펜션은 배편으로 실어다 주고 다음날 데리러 오기에 준비가 치밀해야 한다. 못 잡을 경우를 대비하여 공판장에서 횟감을 구매하여 회를 뜨는 데 참가자 모두 동의했다. 싱싱한 감성돔과 숭어가 무척 싸다. 해상펜션은 편의시설을 고루 갖췄고 상하수와 정화시설 등 환경에도 신경을 썼다.
낚시환경은 좋았으나 낚시성과는 꽝이다. 짜릿한 손맛은커녕 입질조차 안 한다. 결국 준비해간 회로 소주 몇 잔 마시니 느긋해진다.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는 해상펜션은 밤배가 되어 미지의 세계로 둥둥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선잠을 떨치고 눈을 뜨니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솟는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한다. 짭조름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해상펜션에서 서둘러 나와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로 향했다.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특유의 향기와 피톤치드가 온몸에 퍼져 상큼하다. ‘장흥 인구보다 한우가 더 많다’라는 고장에 왔으니 한우고기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홍어삼합을 패러디한 ‘장흥삼합’이 인기다. 정육점에서 착한 가격으로 한우를 구매한 뒤 전문식당에서 상차림 값을 내고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과 함께 돌 판에 굽는다. 깻잎장아찌나 묵은김치로 싸 먹으니 식감이 부드럽다. 장흥 명품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장흥군이 정남진(正南津)을 브랜드로 추진한 것은 2004년이다. 강릉 정동진(正東津)이 1994년 TV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해돋이 관광명소가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위치 선정을 둘러싼 공방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국립지리원의 해석에 따라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해당하는 관산읍 신동리 사금 마을에 표지석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자 용산면 남포리 인근 주민들은 마을 이름 자체가 ‘남쪽 포구’로 정남 쪽을 의미한다며 반발했다. 이제 ‘정남진’은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정남진 장흥 물축제, 정남진전망대 등 장흥을 알리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정서진(正西津)도 지명 선점을 둘러싸고 인천 서구와 충남 태안군 두 자치단체가 신경전을 벌인다. 인천 서구는 2011년 3월 오류동 1539의 6일대를 ‘정서진’으로 지정, 경인아라뱃길과 연계해 서해낙조 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태안군은 지난 2005년 만리포해수욕장에 정서진 표지석을 설치했고, 2011년 만리포 정서진 선포식을 가졌다. 태안군은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충북 중원(충주 일대)을 기점으로 했을 때 정서 방향은 태안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곳이 진짜 정서진인지 역사적, 지리적 의미는 없다. 해넘이 명소에 걸맞은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는 쪽이 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