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별처럼 반짝이는 여름 사랑

별처럼 반짝이는 여름 사랑

by 권영상 작가 2017.05.25

“앞으로 나랑 데이트, 어때?” 노아는 앨리를 갖고 싶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런 예감이 있었다. 밤거리를 함께 걷던 앨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대학 입시 준비를 해야 하고, 테니스 레슨을 받아야 하고, 라틴어 레슨을 받아야 하고, 영화 감상을 해야 해. 이 모두 우리의 목표니까.” 매력적인 17살 아가씨 앨리가 거절한다. 그러자 노아가 묻는다. “우리라니? 우리가 누군데?”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라는 가족 속에 매몰된 네가 아니라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생각하고 대답해봐.”
그날 밤, 앨리는 노아와 함께 자동차 길에 눕기도 하고, 춤도 추며 천천히 노아의 순수한 영혼 속으로 빨려 든다.
노아가 사는 시골 마을 저택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온 부잣집 외동딸 앨리(레이철 맥아담스)와 목재 집하장에서 나무껍질을 벗기며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 노아(라이언 고슬링)의 뜨거우면서도 놀랍도록 행복한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은 아내와 스페인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우리는 핀란드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는 헬싱키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기내 비디오에서 2004년 작 영화 ‘노트북’을 열었다. 얼핏 창밖을 내다봤을 때 비행기는 흰 구름 위에 멈춘 듯 떠 있었다.
앨리는 17살. 사랑에 빠져들기엔 너무도 위험한 나이. 현실을 모른다는 점이 그랬고, 발랄하고 예쁘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깃이 늘 땀에 젖어 있는 노아,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여름날의 열정처럼 달아올랐고, 멜로드라마가 그렇듯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의 반대 또한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 애는 모든 게 너와 맞지 않아! 가난해! 쓰레기라고.”
엄마는 딸의 불붙어가는 사랑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가를 끝내고 돌아간다. 여름 사랑은 별처럼 반짝이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식어버린다.
2차 대전이 일어났다. 의학을 공부하던 앨리는 전선으로 갔고, 거기서 해먼드를 만난다. 엄마가 원했던 그런 인물, 잘 생기고, 돈 많고, 훌륭한 가문에 똑똑한, 남부 출신 부호의 아들이다. 그들은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결혼이 임박할수록 앨리의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옛사랑 노아에 대한 그리움.
앨리는 끝내 그를 만나러 갔고, 그들은 젊은 날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뜨겁게 나눈다. 뒤늦게 쫓아온 약혼자 해먼드를 두고 갈등하는 앨리를 향해 노아도 괴로워한다.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말해봐. 왜 약혼자를 두고 나를 찾아왔는지.”
갈등의 갈림길에서 앨리는 해먼드를 떠나 노아의 곁으로 돌아온다.
세월이 오래 흘렀다. 치매에 걸린 앨리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아는, 자신이 남편인 줄도 모르는 앨리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기록한 글을 읽어주며 기적을 바란다. 기적은 끝내 이루어지며, ‘내 사랑의 집’인 앨리 곁에 함께 누워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헬싱키 공항에 핀에어가 착륙준비를 하고 있다. 시계를 본다. 헬싱키의 아침 9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