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큰 귀

큰 귀

by 김민정 박사 2017.05.22

성당에서 들려오는/ 색소폰 연주 소리
그것도 유행가를/ 구수하게 뽑아낸다
햇살 속/ 퍼져나가는/ “콩밭 매는 아낙네야…”

탱자나무 울타리를/ 쉽게도 넘어오는
설마 신부님이?/ 마냥 궁금하여
초록도/ 짙어지면서/ 귀를 모아 듣는다
- 졸시 「봄, 예천」 전문

얼마 전 예천을 여행한 적이 있다. 담벼락에 옛 풍습들을 그려놓고, 새로운 관광지로 손님을 맞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담벼락에 그린 풍속화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감상하다가, 봄기운이 돋아나는 3월 하순의 담장에 피는 맑은 청매화와 탱자나무 울타리에 돋는 탱자나무 새순과 하얀 목련꽃과 파랗게 돋아나는 마늘밭을 보고 있을 무렵, 갑자기 들려오는 성당 안의 색소폰 연주 소리에 내 귀가 쫑긋 솟는다.
이 밝은 대낮에 누가 색소폰을 부는 것일까? 낮부터 연주회일리는 없고…. 연주곡은 아주 고상한 클래식도 아니고, 구슬픈 곡도 아니고, 그냥 이런 시골에 어울리는 “콩밭 매는 아낙네야”라고 시작되는 구수한 <칠갑산>이었다. 신부님이 색소폰을 연습하는 것일까? 신도들에게 연주하여 보여주시려고? 아니면 신도중의 한 사람이? 상상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한없이 피어오른다.
귀로 들으며 상상하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상상력이 크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변화하는 아름다운 사계(四界)를 볼 수 있는 눈과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에 대한 무한 감사의 마음이 솟았다. 눈으로 확인하는 피어나는 봄의 모습도 한없이 싱그럽고 아름다웠는데, 귀로 들으며 상상하며 감상하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는 나를 마냥 설레게 했다.
절에 가면 부처님의 귀를 자주 쳐다본다. 일반 사람들에 비해 귓불이 참으로 크고,
거의 얼굴 밑부분까지 내려와 있는 경우가 많다. 귀가 큰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기 위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부처님의 큰 귀 상징은 중생들이 비는 소원을 잘 듣고 그 소원들을 들어주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입이 하나인 이유는 말을 아끼라는 뜻이고, 귀가 두 개인 까닭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라는 뜻이라는 속담도 있다. 그것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경청해야 한다는 의미가 짙다.
귀가 크다는 것은 소리에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눈이 없는 동물은 있어도 귀가 없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귀가 없으면 적의 동정을 감지할 수 없다고 한다. 적자생존이 치열한 동물 세계에서 귀는 그만큼 중요하다. 소리로 적의 움직임을 판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육체의 귀로 듣는 소리가 생각의 귀로, 마음의 귀로 확대되어 간다. 큰 귀는 큰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의 귀와 마음의 귀를 크게 열어 주위 상황을 언제나 귀 기우려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하고, 또 바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를 보호할 수 있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도 있다.
우리는 육체의 귀뿐 아니라, 생각의 귀, 마음의 귀도 늘 닫지 않고 크게 열어둘 때,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 상대를 보호하고 배려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