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무소유와 나눔의 실천

무소유와 나눔의 실천

by 이규섭 시인 2017.05.12

라오스는 국민 95%가 불교신자인 남방불교의 나라다. 라오스로 여행을 간다니까 주변에선 “뭐 볼 게 있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탁발이 보고 싶었다. 긴 탁발행렬을 보려면 루앙프라방을 들러야 하는 데 짧은 패키지 일정에는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방비엥에서도 작은 규모의 탁발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엑티비티 체험을 즐길 수 있어 일정을 잡았다.
수도 비엔티안은 불교 색채가 두드러진다. 탓 루앙사원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불교유적지다. 석가모니 가슴 뼈 사리를 모신 곳으로 황금빛 불탑은 지폐와 국기문양에 들어있다. 왓 씨사켓사원은 1818년 왕실용 사원으로 지은 지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1827년 태국 씨암 왕조 침입 때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이유는 태국서 유학한 아누봉 왕이 태국 건축양식으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부 회랑에는 나무와 돌, 청동으로 빚은 6000여 점의 다양한 부처를 전시해 놓았다.
왓 호 파깨우 사원은 1565년 왕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할 때 옛 란쌍 왕국의 상징이었던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 안타깝게도 1779년 태국 샴 왕국과의 전쟁 때 건물은 소실되고 에메랄드 불상은 약탈당해 현재 방콕 왕궁사원에 모셔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6년 프랑스에 의해 재건됐다.
방비엥에 여장을 푼 다음 날 이른 새벽, 어둠이 짙게 깔린 유러피안 거리에 나갔다. 행인이 드물어 두렵고 긴장되어 호텔 부근만 맴돌았다. 셔터를 내린 가게 앞에 공양하러 나온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니 한국인 여행자다. 야자 잎에 싼 찰밥은 현지에서 구매했고, 초콜릿 등 간식은 한국서 가져왔다고 한다. 불심이 대단하다.
날이 훤하게 밝았는데도 탁발행렬이 보이지 않아 유러피안 거리 안쪽에 위치한 사원까지 갔다. 아침 일곱 시 임박해서 노스님을 앞세운 탁발행렬이 거리로 나선다. 공양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새벽 채소시장이 열린 길목에서 스님들이 한참을 기다린다.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서둘러 가지고 나와 공양한다. 그보다 앞서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있기에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다섯 살이라고 한다. 트럭에서 채소를 팔던 아저씨는 바리때 안에 현금을 시주한다. 공양을 받은 스님들은 나란히 서서 축원의 염불로 답례를 한다.
탁발을 하는 스님과 음식물을 공양하는 재가자 모두 맨발이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고 하여 잿빛 장삼을 걸치지만 이곳에서는 흙으로 돌아간다고 황토색 장삼이다. 탁발행렬은 늦은 시간에서야 한국인 신도 앞에 멈췄다. 정성껏 공양하고 지성껏 합장한다. 일렬로 서서 화답의 염불을 한다. 앞에 선 나이든 스님과 맨 뒤쪽 막내 동자승 발우에 나도 달러를 공양했다.
탁발을 마친 스님들은 사원으로 돌아가 청소를 한 뒤 아침 공양을 한다. 탁발은 청빈과 무소유의 실천이며 겸손과 하심의 상징이라고 한다. 시주로 받은 음식이나 물품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다. 탁발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남방불교의 순수한 전통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