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님이라 부르리까

님이라 부르리까

by 김재은 대표 2017.05.11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고 부르리까~’
50대 이상이라면 한 번쯤 읊조렸을 법한 국민가수 이미자님의 노래이다.
우리의 민요 아리랑에서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하면서
‘님’에 대한 특별함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님’은 많은 의미와 이야기가 있는 정겨운 호칭이다.
만해 한용운님은 ‘님의 침묵’에서 ‘조국’을 ‘님’이라 했고, 누군가에게는 ‘님’이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스승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SNS에서는 ‘님’이 상대를 존중하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나의 경우도 SNS를 통해 만나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 차가 많지만 우리는 서로 ‘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뿌리 깊은 나이 문화로만 보면 그게 어디 가능할까 싶지만, 님이라 부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나오고 이제는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었다.
또한 세상과 소통문화의 변화에 따라 가부장적 수직 조직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로 탈바꿈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직원끼리 서로 호칭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의 직급이 아닌 "OO님"을 쓰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을 창간하고 <한국의 발견> 등으로 전통문화를 살려내려 애썼던 한창기 선생은 20년도 훨씬 전에 ‘님’자 붙여 부르기를 실천했다.
그는 이야기했다. ‘님’의 정신은 동학 인내천 사상과도 통하며 신분, 성별, 나이를 떠나 누구든 ‘섬김의 마음’으로 대하자는 것이며, 우리 문화의 근본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그래서 ‘아무개 귀하’나, ‘아무개 씨’로 불러야 잘 부르는 것인 줄 알았던 시대에 ‘아무개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는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평등’과 ‘섬김’ 정신의 회복이자 우리말의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 한 바 있지만 사람을 하늘같이 공경하는 우리 배달겨레의 깊은 마음의 울림이 ‘님’이라는 글자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창기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펼쳐가는 ‘뿌리 깊은 나무 문화 운동’에서도 첫 번째 과제를 “반말 없는 사회”로 설정했다. 요즘 우리말 쓰임새가 너무 험악해져 가고, 그것은 그대로 황폐해진 우리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님’자 붙여 부르기 운동을 통해 우리 삶의 근본문화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말의 성찬’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스스로 머슴이 되어 국민을 섬기겠다면서도 상대에게는 막말을 서슴지 않은 후보들을 누가 그 진정성을 신뢰하겠는가. 진정성의 시작은 어쩌면 진심을 담은 그 호칭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말, 욕설 등은 이제 저 거센 바람에 날려버리고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님’이라 부르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어떨까.
이 세상에 온 어느 누구도 소중한 존재이다. 생각과 취향이 서로 다르다 해도 누군가를 존중하면 그도 나를 존중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면 갈등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도 달라지지 않을까.
이제 기꺼이 님이라 부르자. 그리하여 저 푸른 초원 위에서 ‘님과 함께’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