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편견
오해와 편견
by 정운 스님 2017.05.09
오해와 편견으로 빚어지는 슬픈 일이 종종 있다. 베트남의 한 남자가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다. 그가 떠날 때 임신한 아내가 있었고, 아내에게 꼭 살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이 남자는 다행히도 3년 만에 무사히 귀향하였다. 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아들을 품에 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며칠 후, 그 집안에 제사가 있어 부인은 시장에 음식 재료를 사러 갔다. 그 남자는 아들과 단둘이 있는 시간에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아저씨는 내 아빠가 아녜요. 내 아빠는 다른 사람이에요. 아빠는 늘 밤에 집에 와요.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아빠와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울었어요. 아저씨는 내 아빠가 아니에요. 제 아빠는 따로 있어요.”
이 말을 듣자, 그 남자는 순간적으로 모욕감을 느꼈고, 아내에 대해 배신감이 가득 찼다. 잠시 후 아내가 돌아왔는데도 이 남자는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이유 없이 남편이 자신을 멀리하자, 아내도 점점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심각해졌다. 아내는 아내대로 괴로웠고, 남편은 남편대로 술만 마시며 가족을 멀리했다. 급기야 아내는 물에 빠져 자살을 하고 말았다.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날 밤, 아빠와 아들이 마주 앉았다. 그가 등잔불을 켜자 아들이 “아빠가 왔어요.”라고 외치면서 벽에 비친 친아빠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죽은 아내는 남편의 생사가 걱정되고, 그리울 때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하거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아들에게 등잔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네 아빠란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 남자는 아들이 아버지가 밤에 온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해로 빚은 가족의 참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이의 말을 건네면서 한 번쯤 묻기라도 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아이의 단순한 말 한마디가 오해에 오해를 낳은 것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셀로(Othello)’도 이와 유사하다. 주인공 오셀로는 아내가 갖고 있는 손수건을 보고, 아내가 자신의 부하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오해를 한다. 점점 아내를 색안경으로 보다가 결국 아내를 죽인다. 이후 모든 사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도 자살을 한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오해한 뒤에 자신이나 주위 사람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뒤에야 진실을 깨닫는다.
인간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는 등 감각적인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린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을 5적(五賊), 즉 다섯 도적이라고 말한다. 참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기관을 도적이라고 붙인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귀로 들은 것이 다가 아니다. 수행이나 명상을 통해 모든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곧 자신의 견해와 그릇된 판단, 편견을 줄일 수 있도록 명상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혹 그럴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자. 상대방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진실을 전하고, 상대방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며칠 후, 그 집안에 제사가 있어 부인은 시장에 음식 재료를 사러 갔다. 그 남자는 아들과 단둘이 있는 시간에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아저씨는 내 아빠가 아녜요. 내 아빠는 다른 사람이에요. 아빠는 늘 밤에 집에 와요.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아빠와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울었어요. 아저씨는 내 아빠가 아니에요. 제 아빠는 따로 있어요.”
이 말을 듣자, 그 남자는 순간적으로 모욕감을 느꼈고, 아내에 대해 배신감이 가득 찼다. 잠시 후 아내가 돌아왔는데도 이 남자는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이유 없이 남편이 자신을 멀리하자, 아내도 점점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심각해졌다. 아내는 아내대로 괴로웠고, 남편은 남편대로 술만 마시며 가족을 멀리했다. 급기야 아내는 물에 빠져 자살을 하고 말았다.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날 밤, 아빠와 아들이 마주 앉았다. 그가 등잔불을 켜자 아들이 “아빠가 왔어요.”라고 외치면서 벽에 비친 친아빠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죽은 아내는 남편의 생사가 걱정되고, 그리울 때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하거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아들에게 등잔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네 아빠란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 남자는 아들이 아버지가 밤에 온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해로 빚은 가족의 참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이의 말을 건네면서 한 번쯤 묻기라도 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아이의 단순한 말 한마디가 오해에 오해를 낳은 것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셀로(Othello)’도 이와 유사하다. 주인공 오셀로는 아내가 갖고 있는 손수건을 보고, 아내가 자신의 부하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오해를 한다. 점점 아내를 색안경으로 보다가 결국 아내를 죽인다. 이후 모든 사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도 자살을 한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오해한 뒤에 자신이나 주위 사람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뒤에야 진실을 깨닫는다.
인간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는 등 감각적인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린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을 5적(五賊), 즉 다섯 도적이라고 말한다. 참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기관을 도적이라고 붙인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귀로 들은 것이 다가 아니다. 수행이나 명상을 통해 모든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곧 자신의 견해와 그릇된 판단, 편견을 줄일 수 있도록 명상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혹 그럴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자. 상대방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진실을 전하고, 상대방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