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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쉬멍 제주여행

놀멍쉬멍 제주여행

by 이규섭 시인 2017.04.28

제주도는 말이 통하는 해외로 통한다.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고 싶은 섬으로 언어장벽이 없으니 편하고 좋다. 70∼80년대는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신혼부부 대상 TV 퀴즈오락프로를 제주에서 녹화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제주는 신혼여행지로서 빛이 바랬지만 청정지역에 관광인프라 구축으로 국내 관광 1번지로서의 명성은 꾸준히 지켜왔다.
제주도에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퇴직 후 처음이니 10여 년 넘는다. 지난주 2박 3일 일정으로 이웃 노부부 등 경로우대 대상 6명이 함께 떠났다. 저가 항공권 인터넷 예약은 카드결제의 보안절차가 까다로웠다. 현금 지출이니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렌터카는 운전대를 놓은 지 오래됐고, 두 대를 빌리느니 승합차투어로 알아보았다. 운전기사가 보유한 차량과 인건비, 3끼 점심 식사비 등이 포함되어 부담스럽긴 해도 가이드를 겸해서 좋았다. 패키지여행처럼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의 제주 말) 다녔다.
사드로 위축된 관광업계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제주도는 4월 한 달간 28개 공영관광지의 입장료를 받지 않아 혜택을 톡톡히 봤다. 관광 숙박시설, 사설 관광지, 기념품점, 골프장, 관광식당도 5%에서 최고 65%까지 할인해주는 대대적인 ‘그랜드 세일’을 실시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줄어든 반면 내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 다행이다.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수행여행이다. 공항은 물론 주요 관광지마다 수학여행단 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올레가 올해 10주년이다. 2007년 성산읍에 1코스가 처음 열린데 이어 21개 코스가 개장되면서 관광객 유치의 효자 노릇을 했다. 지난 22일 15-B 올레코스가 개장됐다.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13.5㎞로 5시간 걸린다고 한다. 기존의 15-A 코스가 한라산 중턱 숲과 언덕의 정취를 담고 있다면 15-B 코스는 제주 해안의 진면목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니 제주올레 명품코스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놀멍쉬멍 둘러보기 편한 곳은 일출랜드였다. 파란 동선을 따라가다 지치면 벤치에 쉬어가면 된다. 이곳의 백미는 미천굴(美千窟). 화산 폭발과 용암 유출로 생성된 천연 용암동굴인데 인공미를 지나치게 덧칠해 놓은 게 거슬린다. 워싱턴 야자와 아열대 식물로 조성된 산책로는 외국의 휴양지 느낌이 든다. 조각 거리, 돌하르방 공원, 선인장 온실, 제주 현무암과 야생화 분재정원, 제주 종갓집 등 제주의 볼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조성해 놓은 공간이다.
제주의 상징인 말을 테마로 한 기마공연은 스케일도 웅장하고 박진감 넘친다. 드넓은 상설 야외공연장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을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해 다채로운 마상기예와 무예 액션을 보여줘 흥미를 끈다. 출연진은 몽골 현지에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50여 명의 정예 기마단원들로 학생들의 환호와 노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활에 맞아 주인과 함께 죽는시늉을 하며 쓰러지는 말과 제주 조랑말의 코믹 연기는 압권이다. 말이 연기를 하고 말이 통하는 제주여행에서 여백의 쉼표를 찍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