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by 한희철 목사 2017.04.12
강원도의 한 외진 마을에 살 때였습니다. 끝정자라 불렸던 아랫마을에 살던 분 중에 안갑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머리는 온통 소리가 내린 듯 백발이었지만, 그야말로 진짜 서리가 내린 듯 빛나는 머릿결을 가진 멋쟁이 할머니였습니다. 좋아하는 꽃이 집 주변에 가득하여 할머니의 집은 그야말로 꽃대궐이었고, 하찮은 짐승까지도 사랑하여 길고양이마저도 집고양이처럼 따르게 하던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어느 해 봄날이었습니다. 할머니네 집을 찾았더니 할머니가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마루였습니다. 걸레질이야 늘 하는 것이지만 할머니가 걸레질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비가 집을 지은 것입니다.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용케 옛집을 찾아와 마루 위 서까래 끝에 집을 지은 것입니다. 제비들은 집을 짓느라 바지런히 오가며 눈치도 없이 흰 똥을 싸대어 마루에 똥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때마다 똥을 닦다가 지쳤는지 아예 신문지를 널찍하게 펼쳐 놓았습니다.
문을 닫아도 용케 들어와 집을 짓는다고, 똥을 하도 싸대어 일이라며 말투는 귀찮은 듯했지만 할머니의 말 속엔 반가움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갓 미물의 변함없는 귀향, 사람이 그보다 나은 게 뭘까, 백발의 세월을 두고는 변함없이 돌아온 제비가 섧도록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재 창밖으로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나무에서 꽃들이 피고 지고, 맞은편에 선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에선 연둣빛 이파리가 제법 돋았는데도 자신의 때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은행나무는 잎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가지에는 새집이 하나 있습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 저런 건축술을 어디서 배웠을까 싶을 만큼 기가 막힌 곳에 허술해 보이면서도 실은 견고한 새집 하나를 지었습니다. 잎이 울창할 때야 있는 줄도 모르던 집이었습니다. 지난해 비둘기가 새끼를 까서 나간 후(비둘기가 연신 드나들었거든요), 춥고 사나운 겨울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허술한 나뭇가지로 만든 집이 겨울을 나는 모습이 장하기까지 합니다. 빈집을 볼 때마다 저 둥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떤 새가 다시 찾아와 정겹게 알을 낳고 새끼를 칠까 궁금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덩치가 큰 비둘기 두 마리가 은행나무를 찾아와 한참 동안을 가지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빈 둥지 근처였습니다. 새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마치 옛집이 그냥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비둘기를 본 후 생각이 나면 은행나무를 쳐다봅니다. 언제쯤 비둘기가 다시 찾아와 둥지를 틀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올 것이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뭍으로 올라온 배 한 척이 반가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느 해 봄날이었습니다. 할머니네 집을 찾았더니 할머니가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마루였습니다. 걸레질이야 늘 하는 것이지만 할머니가 걸레질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비가 집을 지은 것입니다.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용케 옛집을 찾아와 마루 위 서까래 끝에 집을 지은 것입니다. 제비들은 집을 짓느라 바지런히 오가며 눈치도 없이 흰 똥을 싸대어 마루에 똥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때마다 똥을 닦다가 지쳤는지 아예 신문지를 널찍하게 펼쳐 놓았습니다.
문을 닫아도 용케 들어와 집을 짓는다고, 똥을 하도 싸대어 일이라며 말투는 귀찮은 듯했지만 할머니의 말 속엔 반가움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갓 미물의 변함없는 귀향, 사람이 그보다 나은 게 뭘까, 백발의 세월을 두고는 변함없이 돌아온 제비가 섧도록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재 창밖으로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나무에서 꽃들이 피고 지고, 맞은편에 선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에선 연둣빛 이파리가 제법 돋았는데도 자신의 때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은행나무는 잎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가지에는 새집이 하나 있습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 저런 건축술을 어디서 배웠을까 싶을 만큼 기가 막힌 곳에 허술해 보이면서도 실은 견고한 새집 하나를 지었습니다. 잎이 울창할 때야 있는 줄도 모르던 집이었습니다. 지난해 비둘기가 새끼를 까서 나간 후(비둘기가 연신 드나들었거든요), 춥고 사나운 겨울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허술한 나뭇가지로 만든 집이 겨울을 나는 모습이 장하기까지 합니다. 빈집을 볼 때마다 저 둥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떤 새가 다시 찾아와 정겹게 알을 낳고 새끼를 칠까 궁금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덩치가 큰 비둘기 두 마리가 은행나무를 찾아와 한참 동안을 가지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빈 둥지 근처였습니다. 새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마치 옛집이 그냥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비둘기를 본 후 생각이 나면 은행나무를 쳐다봅니다. 언제쯤 비둘기가 다시 찾아와 둥지를 틀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올 것이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뭍으로 올라온 배 한 척이 반가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