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가꾸는 나무심기
우정을 가꾸는 나무심기
by 권영상 작가 2017.03.30
일요일 동네 산에 올랐지요. 봄이 완연합니다. 생강나무 꽃도 폈고, 진달래도 폈고, 귀룽나무 잎도 눈이 어리도록 파랗게 폈습니다. 바람이 조금 분다 해도 추운 기운 하나 없이 몸에 딱 맞습니다. 이 동네 산에 발을 대고 사는 나무들도 내 몸 같겠지요.
산을 내려오는데, 저쪽 산 입새에 아이들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습니다. 길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무슨 놀이를 하는가 했는데 아닙니다. 가까이 내려와 보니 아이들 셋에, 젊은 엄마 둘이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네 그루를 심고 있습니다. 식목이 처음인가 봅니다. 상추 모종을 하듯 촘촘히 심네요.
“아니, 거기 가운데 나무 둘은 뽑아다 여기에 심어! 여기에!” 할머니 한 분이 그들 뒤에 서서 아이들 엉덩이 뒤쪽을 가리킵니다.
“5년 뒤면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여! 나무도 애들처럼 클 텐데 좁아터져서 살겄어!” 지나가시던 할머니인지, 함께 온 할머니인지 할머니가 나무를 넓게 심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런데도 옮길 수 없다는 듯 엄마와 아이들은 심어놓은 묘목 둘레를 손으로 꼭꼭 누릅니다. 5년 뒤에 중학생이 된다는 걸 보니 이 아이들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모양입니다.
“어여, 내 말 들으라니까 그러네!” 할머니가 나무 삭정이를 집어 들고 옮겨 심을 자리를 콕콕콕 찍어댑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할머니 말씀을 들을 태세가 아닙니다.
“20년 30년은 생각하고 나무를 심어야지! 안 그러우?” 할머니가 이번에는 잠깐 길을 멈추고 서 있는 나의 도움을 청합니다.
“아이들의 사이좋은 관계를 벌려놓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그 대답을 하며 웃었습니다. 누구 편을 들거나 잘잘못을 말하기가 그랬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옹기종기 심어놓은 묘목을 떨어뜨려놓기 싫어하고, 할머니는 2, 30년을 내다보고 넓게 심기를 권하지만 그 자리도 그 먼 훗날을 내다보기엔 너무 좁습니다.
엄마들의 식목 방식도 분명 잘못됐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그들의 소중한 생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식목일이 가까운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친한 친구랑 이 산에 나란히 나무를 심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할 테지요. 5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어도 오늘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그 애틋한 심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나요.
“나무라는 게 백 년을 사는데...”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 가던 길을 가셨고, 나도 오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식목일이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올해는 새 나무를 심기보다 생각 없이 심어놓은 나무들을 이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3년 전, 뜰보리수나무 양옆에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었는데 뜰보리수나무 가지가 그렇게 크게 벋을지 몰랐습니다. 옆의 두 나무를 간섭하는 바람에 나무 꼴이 우습게 됐습니다. 3년 전만 해도 나무에 대한 상식이 별로 없어 오늘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2, 30년을 내다보지 못했던 거지요.
어쨌거나 옮겨 심을 때 또 옮겨 심더라도 어린 자식들의 우정을 지켜주기 위해 나무를 심던 그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산을 내려오는데, 저쪽 산 입새에 아이들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습니다. 길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무슨 놀이를 하는가 했는데 아닙니다. 가까이 내려와 보니 아이들 셋에, 젊은 엄마 둘이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네 그루를 심고 있습니다. 식목이 처음인가 봅니다. 상추 모종을 하듯 촘촘히 심네요.
“아니, 거기 가운데 나무 둘은 뽑아다 여기에 심어! 여기에!” 할머니 한 분이 그들 뒤에 서서 아이들 엉덩이 뒤쪽을 가리킵니다.
“5년 뒤면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여! 나무도 애들처럼 클 텐데 좁아터져서 살겄어!” 지나가시던 할머니인지, 함께 온 할머니인지 할머니가 나무를 넓게 심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런데도 옮길 수 없다는 듯 엄마와 아이들은 심어놓은 묘목 둘레를 손으로 꼭꼭 누릅니다. 5년 뒤에 중학생이 된다는 걸 보니 이 아이들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모양입니다.
“어여, 내 말 들으라니까 그러네!” 할머니가 나무 삭정이를 집어 들고 옮겨 심을 자리를 콕콕콕 찍어댑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할머니 말씀을 들을 태세가 아닙니다.
“20년 30년은 생각하고 나무를 심어야지! 안 그러우?” 할머니가 이번에는 잠깐 길을 멈추고 서 있는 나의 도움을 청합니다.
“아이들의 사이좋은 관계를 벌려놓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그 대답을 하며 웃었습니다. 누구 편을 들거나 잘잘못을 말하기가 그랬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옹기종기 심어놓은 묘목을 떨어뜨려놓기 싫어하고, 할머니는 2, 30년을 내다보고 넓게 심기를 권하지만 그 자리도 그 먼 훗날을 내다보기엔 너무 좁습니다.
엄마들의 식목 방식도 분명 잘못됐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그들의 소중한 생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식목일이 가까운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친한 친구랑 이 산에 나란히 나무를 심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할 테지요. 5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어도 오늘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그 애틋한 심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나요.
“나무라는 게 백 년을 사는데...”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 가던 길을 가셨고, 나도 오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식목일이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올해는 새 나무를 심기보다 생각 없이 심어놓은 나무들을 이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3년 전, 뜰보리수나무 양옆에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었는데 뜰보리수나무 가지가 그렇게 크게 벋을지 몰랐습니다. 옆의 두 나무를 간섭하는 바람에 나무 꼴이 우습게 됐습니다. 3년 전만 해도 나무에 대한 상식이 별로 없어 오늘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2, 30년을 내다보지 못했던 거지요.
어쨌거나 옮겨 심을 때 또 옮겨 심더라도 어린 자식들의 우정을 지켜주기 위해 나무를 심던 그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