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암담초의 봄날

암담초의 봄날

by 강판권 교수 2017.03.20

봄 햇살이 현삼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암담초의 꽃에 살포시 앉는다. 문을 열고 암담초 곁에 가보니 수줍게 나를 맞는다. 나는 가능하면 거실 베란다에 살고 있는 식물 곁으로 가지 않는다. 혹 그들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될까봐서다. 현재 작은 화분을 우주 삼아 살아가는 암담초의 삶은 힘겹다. 암담초의 몸이 무척 쇠약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꽃은 자신이 죽은 뒤에 후손을 남기려는 몸부림이다. 사람들은 식물의 꽃을 사랑하면서도 꽃이 피는 과정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피우는 과정이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힘들게 살아가지 않는 존재가 만드는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답다는 것은 곧 감동을 선사한다는 뜻이다.
암담초의 꽃은 자신의 몸에 맞게 크지도 작지도 않다. 베란다에 살고 있는 암담초의 꽃망울은 눈을 크게 떠야만 보일 만큼 작다. 꽃은 작든 크든 관계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으면 어떤 꽃이든 피울 수가 없다. 나는 암담초 옆에 앉아서 잎도 보고 줄기도 가까이했다. 나는 암담초와 마주하면서 문득 그의 부모인 현삼을 생각했다. 암담초는 부모를 닮았을까, 부모의 어디를 닮았을까 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암담초는 꽃이 부모를 닮았다. 현삼은 통꽃이고, 암담초도 통꽃이다. 나는 암담초의 꽃을 보면서 오동나무를 생각했다. 오동나무는 암담초와 같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오동나무도 부모를 닮아 통꽃이다.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는 오동나무를 현삼과에서 분리해서 오동나무과로 나누었지만 우리나라 식물학계에서는 여전히 오동나무를 현삼과로 분류한다.
암담초의 봄날이 마냥 따뜻한 것은 아니다. 봄날의 햇살은 암담초에게 언제나 미래를 밝히는 에너지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암담초의 봄날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힘겨운 계절이다. 사람들은 식물에게 힘든 시간은 겨울이라 여기지만 봄날도 식물에게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식물과 사람의 차이는 힘든 시간을 내색하느냐의 여부다. 물론 힘들면 내색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다. 문제는 너무 내색하는 데 있다.
요즘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아우성은 충분히 현실을 대변한다. 날이 갈수록 국내외의 경제 사정이 어려지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리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내색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세상이 험하고 힘들수록 각자의 자리에서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를 생각한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을 맞이했을 때 나무의 삶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의 삶을 통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던 시절을 기억한다. 눈물 훔치면서 어두운 기방에서 묵묵히 걸어 나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매일 매일 당당하게 집을 나선다. 암담한 현실 앞에서 처진 어깨를 펴면서 살아가는 비법은 오로지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실천력이다. 한마디 말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직접 옮기는 행동력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피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