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사람이 주인이다

사람이 주인이다

by 한희철 목사 2017.03.15

멀리 미국에 살던 친구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멀리서 벗이 찾는 즐거움은 굳이 고전의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아도 참으로 큰 것이지요. 얼굴을 대하기만 해도 좋은 사람, 친구란 그런 존재이니까요.
좋은 만남은 만남을 부릅니다. 오랜만에 친구가 방문을 하니 그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좁은 이 땅에 흩어져 살면서도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친구들이 한 친구의 방문을 계기로 모처럼 모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원주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밀린 이야기가 많았지요, 운전을 하면서도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운전을 하던 중에 건널목을 지나게 되었고, 길을 건너려는 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차를 세웠습니다.
신호등이 따로 없는 아주 짧은 거리의 건널목이었습니다. 당연히 차가 먼저 지나갈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길가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차가 멈춰 서자 고맙다며 꾸벅 인사를 하면서 길을 건넜습니다.
그런 모습이 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의 눈에는 몹시 낯설었던 모양입니다. 운전자가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보행자가 인사를 하고 건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30여 년 떨어져 살다 보니 그곳 문화에 익숙해진 탓이지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건널목은 물론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일단 누군가가 차도로 내려서면 무조건 차가 멈춰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보행자가 차도에 발을 내디뎠는데도 차가 멈추지를 않으면 어김없이 딱지를 떼고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길을 다니다 보면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게 됩니다. 초등학교 앞에는 당연히 건널목이 있고, 신호등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앞이니까 속도를 30km 이내로 줄이라는 표지판도 있고, 현재 운전하고 있는 차량의 속도를 숫자로 표시하는 전광판도 세워져 있고, 그래도 모자란다 싶었던지 과속방지턱도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소용없게 만드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에, 보란 듯이 속도를 내어 달리는 차량에, 미안하다는 뜻인지 약을 올리는 표시인지 비상등을 켜고서 맘대로 지나가는 덩치 큰 버스에 이르기까지,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마주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신호등 아래에 ‘초록불이 켜졌을 때도 차도 오는지를 꼭 확인을 하고 건너라’는 경고문이 붙었을까 싶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차를 운전할 때마다 가능하면 보행자 앞에 차를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보행자를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거리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소하고 당연한 모습 속에도 사람에 대한 존중은 얼마든지 담긴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