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정운 스님 2017.03.14
얼마 전 주장자[사찰에서 승려들이 법문할 때 사용하는 막대기]가 하나 생겼다. 그 주장자는 지리산에만 자란다는 나무로 도반 스님의 정성 어린 손길로 사포로 밀고 니스까지 칠해져 있다. 차방, 내가 앉는 자리 언저리에 세워놓고 자주 바라본다. 물론 주장자를 가지고 있을 만큼 필자가 법력이 높은 것도 아니고 수행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매끈하고 잘빠진 그 주장자에 세월의 연륜이 박힌 보기 싫은 굴곡이 군데군데 나 있다. 이 주장자를 만질 때마다 매끈한 부분보다 보기 흉하고, 굴곡진 부위에 더 애착이 간다. 게다가 굴곡진 부위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주장자로 탄생되기 전까지 이 나무가 ‘얼마나 많은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야 했을까?’ 고난의 세월이 빚어낸 상처이다.
삶의 여정에서 사람들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속에 정들며 살아간다.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보다는 정(情)이 더 끈끈한 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운 정 고운 정이 함께 깃들고, 밉고 고운 정이 함께 있어야 인간관계가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지나 먼 훗날에 사람 인연을 아름답고 추억으로 열매 맺는 정에는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똬리를 틀고 영역을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사람의 인생사에도 역경과 행복이 함께 얽혀 굴러간다. 즐거움이 있으면 고통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누구든 고난과 내리막길보다는 행복과 오르막길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뜻대로 되겠는가? 하지만 삶의 기복에서 고락을 겪은 뒤, 많은 시간이 흘러 자신을 되돌아보면 사람을 성장시킨 것은 행복했던 순간보다 고난과 역경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영국 속담에는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몇 년 전 대학을 정년 퇴임한 모 교수님께서 쓰신 『금강경 해설서』를 읽은 적이 있다. 중간 어느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모 대학에서 학장소임을 2년간 맡았다. 학장 임기가 끝나고 외로움과 서운함 때문에 힘들었다. 이전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상의를 하고 찾아오던 동료 교수나 학생들이 나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서운함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차에 태안사 청화스님을 찾아뵙고 나서, 탐, 진, 치 3독인 ‘학장병’이라는 아만심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께 참회기도를 하고 나서 내가 얻은 것은 ‘사람이 올라가기도 어렵지만 내려오기는 더욱 어렵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뒤 두 번째 학장에 선출되었을 때는 인사말로 ‘이 학장 자리는 공적인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장 자리가 개인의 영광이나 명예의 자리라는 마음이 앞설까(?) 나 자신이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어느 철학자가 사람은 철들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워질수록 현명해진다고 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외로움을 느끼고, 고난을 느끼는 그 자리에 삶의 진솔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삶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내리막길에서 그 고난을 부정한다면, 결국 힘든 사람은 자신이다.
고난과 내리막길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이것도 인생의 한 일부분이다. 이 고난을 극복했을 때,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끈하고 잘빠진 그 주장자에 세월의 연륜이 박힌 보기 싫은 굴곡이 군데군데 나 있다. 이 주장자를 만질 때마다 매끈한 부분보다 보기 흉하고, 굴곡진 부위에 더 애착이 간다. 게다가 굴곡진 부위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주장자로 탄생되기 전까지 이 나무가 ‘얼마나 많은 추위와 비바람을 견뎌야 했을까?’ 고난의 세월이 빚어낸 상처이다.
삶의 여정에서 사람들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속에 정들며 살아간다.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보다는 정(情)이 더 끈끈한 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운 정 고운 정이 함께 깃들고, 밉고 고운 정이 함께 있어야 인간관계가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지나 먼 훗날에 사람 인연을 아름답고 추억으로 열매 맺는 정에는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똬리를 틀고 영역을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사람의 인생사에도 역경과 행복이 함께 얽혀 굴러간다. 즐거움이 있으면 고통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누구든 고난과 내리막길보다는 행복과 오르막길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뜻대로 되겠는가? 하지만 삶의 기복에서 고락을 겪은 뒤, 많은 시간이 흘러 자신을 되돌아보면 사람을 성장시킨 것은 행복했던 순간보다 고난과 역경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영국 속담에는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몇 년 전 대학을 정년 퇴임한 모 교수님께서 쓰신 『금강경 해설서』를 읽은 적이 있다. 중간 어느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모 대학에서 학장소임을 2년간 맡았다. 학장 임기가 끝나고 외로움과 서운함 때문에 힘들었다. 이전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상의를 하고 찾아오던 동료 교수나 학생들이 나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서운함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차에 태안사 청화스님을 찾아뵙고 나서, 탐, 진, 치 3독인 ‘학장병’이라는 아만심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께 참회기도를 하고 나서 내가 얻은 것은 ‘사람이 올라가기도 어렵지만 내려오기는 더욱 어렵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뒤 두 번째 학장에 선출되었을 때는 인사말로 ‘이 학장 자리는 공적인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장 자리가 개인의 영광이나 명예의 자리라는 마음이 앞설까(?) 나 자신이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어느 철학자가 사람은 철들수록 외로워지고 외로워질수록 현명해진다고 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외로움을 느끼고, 고난을 느끼는 그 자리에 삶의 진솔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삶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내리막길에서 그 고난을 부정한다면, 결국 힘든 사람은 자신이다.
고난과 내리막길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이것도 인생의 한 일부분이다. 이 고난을 극복했을 때,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