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해송과 파도 소리

해송과 파도 소리

by 강판권 교수 2017.03.06

해송(海松)은 바닷가에 주로 살고 있는 소나무의 종류다. 줄기가 검어서 ‘흑송(黑松)’이라 부르고, 우리말로 ‘곰솔’이라 부른다. 모든 생명체는 어떤 공간에 사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그래서 해송도 바닷바람을 맞아서 줄기가 검고 잎도 길면서 거칠다. 그러나 해송도 나이가 많이 들면 줄기의 색깔이 붉게 변하기도 한다. 해송의 줄기가 붉게 바뀌는 것은 부모인 소나무를 닮아가는 것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부모를 한층 많이 담아 간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별로 닮지 않았지만 지금은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모습을 빼닮았다. 자식들은 나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의 자식들도 훗날 나의 말과 행동대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종종 가족과 함께 경주 바닷가 횟집을 찾는다. 횟집 근처에는 해송과 등대가 있다. 봄에 그 횟집을 찾으면 해송 아래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다. 가파른 언덕에 똬리를 튼 해송은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굵게 만들어 육지 방향으로 뻗어 있다. 균형은 모든 생명체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해송은 자신의 근거지가 잘려나가자 살아남으려고 죽을 각오로 뿌리를 강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닷가의 해송은 평생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평소에는 파도 소리가 자장가로 들리기도 할 것이고, 태풍이 오면 엄청나게 무서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해송의 몸은 자연스럽게 파도소리에 따라 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횟집의 해송을 볼 때마다 고향에 살고 있는 해송을 떠올린다. 나의 고향에 살고 있는 해송은 파도 소리 대신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만나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자란다. 나는 어린 시절 집 뒤편 산에 살고 있는 해송에 그네를 만들어 놀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네를 맺었던 해송은 아주 오래전에 태풍에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면 나무와 맺었던 나의 기억도 멈춘다. 고향의 해송은 그네 말고도 소를 맺어두는 곳이기도 했다. 소들은 그곳에서 지내다가 똥을 싼다. 소똥은 며칠 지나면 조금씩 마르면서 벌레들의 서식처로 변한다. 나는 소똥에 손을 넣어 소똥벌레는 잡곤 했다. 소똥벌레 중에서도 뿔이 달린 수놈은 아주 인기가 있었다. 친구들과 서로 싸움을 붙여서 즐겁게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송에 대한 나의 기억 중에는 즐겁지 않은 것도 있다. 해송 옆의 소똥이 말랐을 때 벌레를 잡기 위해 손을 넣는 순간 손가락이 아파왔다. 지네에게 물린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겁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지만 어머니는 출타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옆집의 숙모에게 달려갔다. 숙모는 나를 바로 옆집의 수탉에게 데리고 가서 고개를 숙이고 지네에 물린 손가락을 내밀도록 했다. 나는 아무 연고도 모른 채 손가락을 수탉에게 내밀었다. 수탉은 부리로 내 손가락을 쪼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숙모가 나의 손가락을 수탉에게 내밀도록 한 것은 지네와 닭이 앙숙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숙모의 행동은 닭만이 지네를 쪼아 먹을 수 있다는 일종의 미신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당시 지네에 물린 상처를 보면서 미신의 효험을 생각한다. 올해 닭의 해를 맞아 닭의 소리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소리를 정확하게 들어야만, 그것도 주변의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줄 알아야 엇결이 아닌 순결을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