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담그며
장을 담그며
by 이규섭 시인 2017.03.03
음력 정월 마지막 날, 장을 담갔다. 이른 아침 커다란 고무 들통에 물을 받고 소금을 넣어 긴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젓는다. 며칠 전 신안에서 택배로 구매한 소금은 눈꽃처럼 깨끗해 불순물을 거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예전엔 어머니가 장독 안에 짚을 태워 소독했으나 식초로 닦은 뒤 뜨거운 물로 헹궈냈다. 소금이 녹기를 기다리며 메주를 씻었다. 검고 푸른곰팡이는 솔로 문질러 닦아내고 헹군 뒤 물기를 빼 항아리에 넣었다.
소금이 얼추 녹았다. 염도계 없이 계란으로 염도를 측정한다. 날달걀을 넣어 윗부분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떠오르면 적당하다. 이제까지 이 방법을 고수했으나 실패는 없었다. 소금물을 항아리에 붓는다. 메주가 둥둥 뜬다. 대나무를 열십자로 가로질러 메주가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대나무가 없으니 가느다란 알루미늄 봉을 휘어 떠오르는 메주를 가라앉혔다.
예전엔 장이 맛있게 익기를 기원하며 항아리 턱에 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을 치기도 했다. 숯과 고추와 대추를 넣었다. 숯은 잡냄새와 찌꺼기를 제거해주는 정화기능을 하고, 고추는 감칠맛을 돋우고 대추는 장맛을 달게 해준다고 한다. 아내가 올겨울 낙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항아리와 소금 포대, 메주를 옮기는 일을 집중적으로 도왔다. 허리가 뻐근하다.
추위가 풀리지 않은 정월에 장을 담그는 건 온도와 습도가 알맞아 소금이 적게 들어 장이 짜지 않고, 숙성기간이 길어 깊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이 맛있게 익으려면 햇볕과 바람에 맡기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햇살 두텁고 미세먼지와 황사가 없는 날엔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두 달 정도 지나 장 가르기를 해야 한다. 너무 일찍 하면 간장이 싱겁고, 늦게 하면 된장 맛이 약해 시기 조절이 중요하다.
항아리 속 메주를 꺼내 손으로 곱게 치댄다. 너무 되면 장물을 부어 조절하는 데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메주를 꺼내 치댄 것이 된장이고 장물이 조선간장이다.
장 담그기는 일 년 농사다. 입동 무렵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작업도 녹록지 않다. 삶은 콩은 디딜방아나 절구에 찧었으나 궁여지책으로 면 포대에 넣은 뒤 천을 덮어 밟아 적당하게 으깬다. 사각의 메주 틀은 주방기구 만드는 집에서 맞췄다. 옥상에서 꾸들꾸들하게 말린 뒤 짚으로 엮는 대신 양파주머니에 넣어 옥탑방 추녀 끝에 매달았다. 장 담그기 전에 떼어내 박스에 담아 전기장판 위에서 띄웠다.
장 담그기는 한 해도 거르지 않은 우리 집 연례행사다. 지인들은 “아직도 조선시대에 사느냐”며 핀잔하는 듯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추켜세운다. 번거롭고 힘이 들어 아내에게 “이제는 사 먹자”고 하지만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살림나간 아들네와 작은 집에 해마다 된장과 간장을 준다. 아내는 “장맛이 좋다”는 칭찬에 약하다. 누님과 사돈은 물론 교회 식구들에게도 퍼준다. 건강도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옛 방식을 고수하며 장을 담그는 이유다.
소금이 얼추 녹았다. 염도계 없이 계란으로 염도를 측정한다. 날달걀을 넣어 윗부분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떠오르면 적당하다. 이제까지 이 방법을 고수했으나 실패는 없었다. 소금물을 항아리에 붓는다. 메주가 둥둥 뜬다. 대나무를 열십자로 가로질러 메주가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대나무가 없으니 가느다란 알루미늄 봉을 휘어 떠오르는 메주를 가라앉혔다.
예전엔 장이 맛있게 익기를 기원하며 항아리 턱에 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을 치기도 했다. 숯과 고추와 대추를 넣었다. 숯은 잡냄새와 찌꺼기를 제거해주는 정화기능을 하고, 고추는 감칠맛을 돋우고 대추는 장맛을 달게 해준다고 한다. 아내가 올겨울 낙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항아리와 소금 포대, 메주를 옮기는 일을 집중적으로 도왔다. 허리가 뻐근하다.
추위가 풀리지 않은 정월에 장을 담그는 건 온도와 습도가 알맞아 소금이 적게 들어 장이 짜지 않고, 숙성기간이 길어 깊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이 맛있게 익으려면 햇볕과 바람에 맡기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햇살 두텁고 미세먼지와 황사가 없는 날엔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두 달 정도 지나 장 가르기를 해야 한다. 너무 일찍 하면 간장이 싱겁고, 늦게 하면 된장 맛이 약해 시기 조절이 중요하다.
항아리 속 메주를 꺼내 손으로 곱게 치댄다. 너무 되면 장물을 부어 조절하는 데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메주를 꺼내 치댄 것이 된장이고 장물이 조선간장이다.
장 담그기는 일 년 농사다. 입동 무렵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작업도 녹록지 않다. 삶은 콩은 디딜방아나 절구에 찧었으나 궁여지책으로 면 포대에 넣은 뒤 천을 덮어 밟아 적당하게 으깬다. 사각의 메주 틀은 주방기구 만드는 집에서 맞췄다. 옥상에서 꾸들꾸들하게 말린 뒤 짚으로 엮는 대신 양파주머니에 넣어 옥탑방 추녀 끝에 매달았다. 장 담그기 전에 떼어내 박스에 담아 전기장판 위에서 띄웠다.
장 담그기는 한 해도 거르지 않은 우리 집 연례행사다. 지인들은 “아직도 조선시대에 사느냐”며 핀잔하는 듯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추켜세운다. 번거롭고 힘이 들어 아내에게 “이제는 사 먹자”고 하지만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살림나간 아들네와 작은 집에 해마다 된장과 간장을 준다. 아내는 “장맛이 좋다”는 칭찬에 약하다. 누님과 사돈은 물론 교회 식구들에게도 퍼준다. 건강도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옛 방식을 고수하며 장을 담그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