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선묘의 사랑

선묘의 사랑

by 김민정 박사 2016.11.21

이승 인연 다하면 저승에서 만나고
저승 인연 다하면 이승에서 뵈올까요
선묘의 낮은 음성이 예서 다시 들리고

돌때 낀 사리탑 위 별빛 고운 밤이 앉고
공간을 메아리쳐 돌아오는 네 생각에
때로는 나비가 되어 그리움을 파닥였지

일상의 와중 속에 감정의 선을 둘러
잔기침 한 번에도 푸른 깃을 사리더니
오늘은 천 년의 무게로 내 곁에 와 앉는 그대

- 졸시, 「선묘의 사랑」 전문

선묘(善妙)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당나라(중국)에서 공부할 때 그를 사모했던 중국의 아름다운 소녀다. 의상대사가 고국 신라로 돌아오게 되자 바닷가에서 그 배를 바라보다가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됐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상대사의 배를 보호해 무사히 신라에 닿게 했고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에 터를 닦고 절을 세우려 할 때 그곳의 요괴들이 방해하자 용이 바위를 들어 올려 그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때서야 의상대사는 자신을 사모하는 선묘의 사랑을 깨닫고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짓고, 선묘의 사당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주 부석사에 가면 선묘의 사당이 있다.
이 작품은 선묘와 의상대사의 설화를 바탕으로 해 사랑의 순수성과 영원성을 추구해 본 시조다.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랑, 죽어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순수한 사랑만이 가능할 것이다.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수 있는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은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의 참모습이다. 동양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선묘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생각나는 서양의 시가 있다.
‘내가 어떻게 그대를 사랑하느냐고요? / 눈 감고 헤아려 보겠어요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 존재의 끝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 더듬을 때 / 도달할 수 있는 그런 높이만큼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태양이나 촛불 아래서 / 일상생활의 가장 조용한 필요에 따라서 / 나는 그대를 자유롭게 사랑해요 // 사람들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듯이 / 나는 그대를 순수하게 사랑해요 // 사람들이 칭찬에 돌아서는 것처럼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옛 슬픔이 흘렸던 정열로 / 내 어릴 적 신앙으로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세상 떠난 모든 성인과 함께 / 내가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 /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하늘의 뜻이라면 죽고 난 후 / 그대를 더욱더 사랑하겠어요 (영국시인. E. 브라우닝의 소네트, 「내가 어떻게 그대를 사랑하느냐고요?」 전문)
사랑의 시는 동서고금, 모습이 다르지 않다. 사랑의 순간에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만큼 최고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로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도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으리라.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계산하고 재는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냥 사람 자체로 좋을 때,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주어도주어도 자꾸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이 사랑의 순수한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젊었을 때 하는 사람이 순수할 것이다. 나이 들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순수한 마음도 닳아서 사랑도 계산적으로 흐르게 되고, 순수한 마음은 많이 사라진다. 시인들이 젊은 시절에 쓴 사랑의 시들이 유명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순수할 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