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
by 정운 스님 2016.11.15
2600년 전 고대 인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의 일이다. 당시 인도는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다. 나라 가운데 사위국의 유리왕은 부왕인 파사익왕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유리왕의 친모는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국 여인이었다. 파사익왕이 카필라국 왕에게 공주와의 혼인을 청했을 때, 카필라국에서는 천민[유리왕 친모]을 공주로 가장해 결혼시켰다.
유리왕이 어린 시절, 외가인 카필라국에 갔다가 시녀들이 유리왕을 천민이라며 손가락질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어린 유리왕은 당시 큰 상처를 받고, ‘성인이 되면 카필라국을 패망시킨다’는 다짐을 했었다.
유리왕은 왕이 된 후, 카필라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군대를 정비했다. 유리왕은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국을 향해 전진했다. 유리왕이 중간쯤 갔을 무렵, 부처님께서 뙤약볕 마른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유리왕은 부처님을 보고 말에서 내려 물었다.
“부처님 저쪽 큰 나무 밑이나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곳에 계시지 않고, 그늘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작은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고향 카필라국은 이렇게 초라한 작은 나무나 다름이 없소. 내가 아무리 깨달은 성자이지만, 저 큰 나무그늘보다 나의 고향 같은 이 작은 나무그늘이 더 편안하다오”
유리왕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본국으로 돌아갔다. 몇 달 후 다시 유리왕은 군대를 정비해 카필라국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가는 길목에 부처님이 또 앉아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네 번째에는 부처님도 유리왕의 야욕을 막지 못했다.
유리왕이 카필라국에 쳐들어가 백성들과 신하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했다. 카필라국의 왕은 유리왕에게 나가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내가 저 깊은 강물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소. 내가 강물 안에 들어가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신하들과 백성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해주시오. 내가 물 밖으로 나온 뒤에 그들을 어떻게 해도 괜찮소.”
유리왕은 카필라국왕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카필라국 사람들이 다 도망을 가도록 왕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왕이 군사들을 시켜 물속을 들여다보니, 왕은 머리를 나무뿌리에 동여매고 죽어 있었다. 유리왕은 비록 패망한 나라이지만,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었고, 자신의 침략행위를 참회했다고 한다.
성자인 부처님도 당신의 고향이 패망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고, 카필라국의 왕도 자신의 안위가 아닌 백성을 연민히 여기셨다.
지금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가정이나 사회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혹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자기 뜻과 맞지 않아도 ‘나’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를 먼저 염두에 두면 어떨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터전에서 개인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한다면, 이 힘든 역경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된다.
유리왕이 어린 시절, 외가인 카필라국에 갔다가 시녀들이 유리왕을 천민이라며 손가락질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어린 유리왕은 당시 큰 상처를 받고, ‘성인이 되면 카필라국을 패망시킨다’는 다짐을 했었다.
유리왕은 왕이 된 후, 카필라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군대를 정비했다. 유리왕은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국을 향해 전진했다. 유리왕이 중간쯤 갔을 무렵, 부처님께서 뙤약볕 마른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유리왕은 부처님을 보고 말에서 내려 물었다.
“부처님 저쪽 큰 나무 밑이나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곳에 계시지 않고, 그늘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작은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고향 카필라국은 이렇게 초라한 작은 나무나 다름이 없소. 내가 아무리 깨달은 성자이지만, 저 큰 나무그늘보다 나의 고향 같은 이 작은 나무그늘이 더 편안하다오”
유리왕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본국으로 돌아갔다. 몇 달 후 다시 유리왕은 군대를 정비해 카필라국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가는 길목에 부처님이 또 앉아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네 번째에는 부처님도 유리왕의 야욕을 막지 못했다.
유리왕이 카필라국에 쳐들어가 백성들과 신하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했다. 카필라국의 왕은 유리왕에게 나가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내가 저 깊은 강물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소. 내가 강물 안에 들어가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신하들과 백성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해주시오. 내가 물 밖으로 나온 뒤에 그들을 어떻게 해도 괜찮소.”
유리왕은 카필라국왕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카필라국 사람들이 다 도망을 가도록 왕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왕이 군사들을 시켜 물속을 들여다보니, 왕은 머리를 나무뿌리에 동여매고 죽어 있었다. 유리왕은 비록 패망한 나라이지만,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었고, 자신의 침략행위를 참회했다고 한다.
성자인 부처님도 당신의 고향이 패망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고, 카필라국의 왕도 자신의 안위가 아닌 백성을 연민히 여기셨다.
지금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가정이나 사회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혹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자기 뜻과 맞지 않아도 ‘나’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를 먼저 염두에 두면 어떨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터전에서 개인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한다면, 이 힘든 역경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