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와 단풍놀이
가로수와 단풍놀이
by 강판권 교수 2016.11.14
형형색색의 단풍은 나무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올해는 가을비가 잦은 탓인지 단풍의 시기도 늦을 뿐 아니라 상태도 곱지 않다. 전국을 다녀도 만산홍엽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나는 단풍 구경을 위해 먼 곳을 떠나지 않는다. 늘 주변에서 단풍을 즐겨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년 단풍을 즐기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늘 차가운 바람이 찾아든다. 그 이유는 가로수의 단풍을 마음껏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일품이다.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가로수도 제대로 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로수의 단풍은 자동차 주차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아파트 주변에는 트럭은 물론 자동차 주차로 늘 어수선하다. 아무리 단속해도 효과는 잠시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내 집 주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다.
나는 가로수와 차량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선진국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따라서 가로수 정책만 보면 선진국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자동차 주차도 가로수처럼 선진국을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로수와 자동차 주차는 거의 후진국 수준에 가깝다. 아무리 가로수를 많이 심어도 주차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그 가치는 반감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로수 보호 정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최근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가로수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는 종종 가로수를 제거하는 지자체와 시민 간의 갈등을 취재하는 기자의 전화를 받는다. 기자가 나에게 전화하는 이유는 가로수를 인문학적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한 사회의 품격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나무에는 ‘목격(木格)’이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은 목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는 어김없이 나무를 베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내가 사는 곳에서도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교통체증이 예상되자, 이곳을 대표하는 나무를 벤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책 당국자의 태도는 전형적인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현상은 전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도로변에 자동차 주차를 허용하는 순간, 가로수의 가치는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가로수는 대부분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가로수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교통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절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주차시설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한, 매년 가로수 단풍을 즐길 수 없다. 나는 휴일에 가로수 길을 따라 걷곤 한다. 그러나 자동차 때문에 낙엽을 즐길 수도 없거니와 걷기조차 어렵다. 차고지도 없는 차량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통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반드시 완벽한 주차시설을 갖춘 건축만 허용하는 주택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개인소득이 올라도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선진국은 단순히 경제 수준이 아니라 문화 수준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일품이다.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가로수도 제대로 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로수의 단풍은 자동차 주차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아파트 주변에는 트럭은 물론 자동차 주차로 늘 어수선하다. 아무리 단속해도 효과는 잠시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내 집 주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다.
나는 가로수와 차량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선진국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따라서 가로수 정책만 보면 선진국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자동차 주차도 가로수처럼 선진국을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로수와 자동차 주차는 거의 후진국 수준에 가깝다. 아무리 가로수를 많이 심어도 주차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그 가치는 반감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로수 보호 정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최근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가로수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는 종종 가로수를 제거하는 지자체와 시민 간의 갈등을 취재하는 기자의 전화를 받는다. 기자가 나에게 전화하는 이유는 가로수를 인문학적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한 사회의 품격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나무에는 ‘목격(木格)’이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은 목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는 어김없이 나무를 베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내가 사는 곳에서도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교통체증이 예상되자, 이곳을 대표하는 나무를 벤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책 당국자의 태도는 전형적인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현상은 전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도로변에 자동차 주차를 허용하는 순간, 가로수의 가치는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가로수는 대부분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가로수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교통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절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주차시설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한, 매년 가로수 단풍을 즐길 수 없다. 나는 휴일에 가로수 길을 따라 걷곤 한다. 그러나 자동차 때문에 낙엽을 즐길 수도 없거니와 걷기조차 어렵다. 차고지도 없는 차량이 도심을 장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통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반드시 완벽한 주차시설을 갖춘 건축만 허용하는 주택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개인소득이 올라도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선진국은 단순히 경제 수준이 아니라 문화 수준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