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이 나르샤
구룡이 나르샤
by 이규섭 시인 2016.11.11
교통수단이 늘었어도 구룡포는 여전히 멀다. 구룡포중학교 2시간 강의를 위해 11시간 이동하는 강행군이다. 새벽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마을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서울역으로 간다. 포항까지 KTX로 2시간 30여 분, 왕복 5시간 넘게 걸린다. 포항역에서 구룡포까지는 배차 간격이 뜸한 직통 버스로 40여 분 더 가야 한다. 종점에 도착하면 담당 선생님이 승용차로 마중 나온다. 귀가 땐 역순이지만 직통 버스 시간대가 맞지 않아 포항 시내에서 환승하여 포항역까지 간다. 귀가 후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피로가 밀물져 온다.
구룡포중학교는 80년대 초 한 학년이 9학급으로 학생이 많았으나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지금은 한 학년 한 반뿐, 강의를 맡은 1학년은 21명이다. 신축한 학교는 넓고 쾌적하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 너머로 동해가 넘실거린다. 아이들은 순박해서 좋다. 바다처럼 푸르고 드넓게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열 차례의 강의 마지막 날인 지난 11일부터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버스종점 아라광장에서 열렸다. 구룡포의 명품이 된 과메기는 생미역에 실파를 올리고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비린내가 가시고 식감이 부드럽다. 올 축제 때 처음으로 전국 청소년 과메기 요리경연 대회를 치러 차별화한 게 돋보인다. 다무포 앞바다는 고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권을 장악했다. 요즘은 고래는 울산, 대게는 영덕, 오징어는 울릉에 명성을 빼앗기고 남은 게 청어 아닌 꽁치 과메기다.
아라광장 앞쪽은 구룡포구, 뒤쪽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10월 초까지 입구에 걸렸던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간판이 바뀌었다. 포항시가 2011부터 3년간 8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조성했으나 이름이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근대역사는 없고 일본인이 거주하던 가옥 20여 채가 보존된 게 고작이다. 지난해 설문 조사를 거쳐 명칭을 변경했다.
일본인 가옥마다 옛날 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리점 ‘연해루’는 리모델링 후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인기 요릿집 ‘일심정’은 일본식 찻집으로 변했다.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했던 집 외벽엔 스틸사진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가옥이다. 1920년대 가가와 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으로 정원과 일본식 다다미, 조상의 위패를 모신 부츠단, 난방 도구 고다쯔, 부엌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꾸며놓았다.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 120개 돌기둥에 새겨놓은 이름들은 1960년대 충혼각 건립 때 후원자들이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 구룡포항 조성에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으나 해방 후 주민들이 시멘트로 발라 기록을 덮어버린 뒤 돌기둥을 반대방향으로 돌려세웠다고 한다. 공원 정상에 오르니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형상의 아홉 마리 용 동상이 구룡포 앞바다를 굽어본다. ‘구룡이 나르샤’ 구룡포를 활어처럼 펄펄 뛰게 경기를 되살려줬으면 좋겠다.
구룡포중학교는 80년대 초 한 학년이 9학급으로 학생이 많았으나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지금은 한 학년 한 반뿐, 강의를 맡은 1학년은 21명이다. 신축한 학교는 넓고 쾌적하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 너머로 동해가 넘실거린다. 아이들은 순박해서 좋다. 바다처럼 푸르고 드넓게 꿈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열 차례의 강의 마지막 날인 지난 11일부터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버스종점 아라광장에서 열렸다. 구룡포의 명품이 된 과메기는 생미역에 실파를 올리고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비린내가 가시고 식감이 부드럽다. 올 축제 때 처음으로 전국 청소년 과메기 요리경연 대회를 치러 차별화한 게 돋보인다. 다무포 앞바다는 고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권을 장악했다. 요즘은 고래는 울산, 대게는 영덕, 오징어는 울릉에 명성을 빼앗기고 남은 게 청어 아닌 꽁치 과메기다.
아라광장 앞쪽은 구룡포구, 뒤쪽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10월 초까지 입구에 걸렸던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간판이 바뀌었다. 포항시가 2011부터 3년간 8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조성했으나 이름이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근대역사는 없고 일본인이 거주하던 가옥 20여 채가 보존된 게 고작이다. 지난해 설문 조사를 거쳐 명칭을 변경했다.
일본인 가옥마다 옛날 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리점 ‘연해루’는 리모델링 후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인기 요릿집 ‘일심정’은 일본식 찻집으로 변했다.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했던 집 외벽엔 스틸사진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가옥이다. 1920년대 가가와 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으로 정원과 일본식 다다미, 조상의 위패를 모신 부츠단, 난방 도구 고다쯔, 부엌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꾸며놓았다.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 120개 돌기둥에 새겨놓은 이름들은 1960년대 충혼각 건립 때 후원자들이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 구룡포항 조성에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으나 해방 후 주민들이 시멘트로 발라 기록을 덮어버린 뒤 돌기둥을 반대방향으로 돌려세웠다고 한다. 공원 정상에 오르니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형상의 아홉 마리 용 동상이 구룡포 앞바다를 굽어본다. ‘구룡이 나르샤’ 구룡포를 활어처럼 펄펄 뛰게 경기를 되살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