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디오게네스가 그립다

디오게네스가 그립다

by 안양교차로 2016.11.02

세상의 모든 주머니는 무엇인가를 채우면 이내 꽉 차게 되어 더 이상은 채울 수가 없게 됩니다. 딱 하나 욕심의 주머니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욕심을 담는 주머니는 밑이 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채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욕심은 끝이 없어 만족함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됐다 싶은데도 멈출 줄을 모르고, 넉넉하다 싶은데도 더 많은 것을 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 디오게네스를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일까요? 디오게네스는 겨우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나무통에서 살았던 거지 철학자입니다. ‘개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서 ‘견유학파(犬儒學派)’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실제로 디오게네스는 그릇 하나 지니지 않고 살아가는 개를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릇까지 버렸다고 합니다.
디오게네스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오지요. 나무통 앞에 있는 디오게네스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었다지요. 이에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답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다만 대왕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좀 비켜달라고 말이지요.
알렉산더가 내가 두렵지 않느냐 물었을 때 디오게네스가 되물었다고 합니다. 대왕은 선한 분인지, 악한 분인지를 말이지요. 선하다고 대답을 하자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답니다. 선한 분을 두려워할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 거지 철학자의 모습을 보고 알렉산더를 수행하고 온 사람들은 다 비웃었지만 알렉산더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그랬답니다. 만일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입니다.
디오게네스와 충돌한 사람 중에는 아리스티포스라는 이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쾌락주의를 지지해 키레네학파를 연 사람입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시냇가에서 푸성귀를 씻고 있었습니다. 거지처럼 가난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였으니 먹는 것도 기름진 것 대신 푸성귀뿐이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에 그 모습을 본 아리스티포스가 말했습니다. 고개 숙이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푸성귀만 먹는 신세는 면할 수 있을 것을, 하고 말이지요. 그 말을 들은 디오게네스가 아리스티포스의 말을 받았습니다. 푸성귀를 먹고 사는 법을 알았더라면 고개를 숙이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고 말입니다. 오가는 대화 속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극명하게 부딪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혼란과 충격 그리고 허탈감을 뛰어넘는 분노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끝 모르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근본적인 회의감까지 듭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온 나라를 혼란과 분노의 수렁덩이로 빠뜨린 일도 결국은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었던 것이지요. 끝이 없는 욕심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온 천하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요. 알렉산더 대왕 앞의 디오게네스가 문득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