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내가 마실 커피는 내가

내가 마실 커피는 내가

by 한희철 목사 2016.10.12

오래전 독일에서 살 때 접한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한 장관이 경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관이 경질되는 일이야 특별할 것이 없는,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 일은 대개 부패나 부정과 관련하여 일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독일 장관의 경질 소식이 새롭게 들렸던 것은 경질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경질을 당한 장관은 공적인 일로 쌓인 항공 마일리지를 개인적으로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생긴 마일리지를 자기 자신을 위해 썼다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공무로 쌓인 마일리지를 개인을 위해 썼다는 이유로 장관직에서 경질이 되어 물러나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게 여겨졌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에 연관이 되어도 물러날 줄 모르는,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에서는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혼을 몇 번 하든지 그런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공적인 일을 사적인 일과 연관시키는 것은 철저하게 금하고 있었습니다. 고위 공직자를 세우며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늘리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네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사무실을 자택 지하에 두고 사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한 번은 세무 감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무서 직원이 나와 그동안 세금을 정직하게 냈는지, 불법으로 탈세한 것은 없는지를 조사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약속한 시각에 세무서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 온갖 서류를 검사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직원은 점심은 물론 커피 한 잔까지도 대접을 받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차 한 잔을 대접받는 것도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아예 자신이 커피를 챙겨서 왔더라는 것이지요. 만약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세무 감사를 하면서 차 한 잔도 대접을 받지 않는, 커피 한 잔까지도 본인이 직접 준비를 하는, 과연 그런 일이 우리에게 가능했을까 모르겠습니다.
많은 논란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김영란 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기준과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을 대접하거나 몰래 금품을 제공함으로 합법적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얻어내는 일이 근본적으로 차단이 되었습니다. 정(情)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있고, 법망을 피해 부정이 교묘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의미 있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야 어색하겠지만, 그동안의 관행에서 벗어나 바른길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적인 일에는 지위와 상관없이 내가 마실 커피는 내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