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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이’는 콩글리시

‘더치페이’는 콩글리시

by 이규섭 시인 2016.10.07

예상은 했지만 파장은 의외로 크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야기다. 시행된 지 사흘만인 시월 첫 연휴에 예식장과 장례식장엔 보상금을 노린 ‘란파라치’들이 설쳤다는 보도다. 공무원 친구에게 30만 원 축의금을 받은 사람은 가족 이름으로 10만 원씩 봉투를 나눠 냈다니 법망을 피하려는 아이디어가 기막힌다.
주무 부서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생화를 달아줘서는 안 되지만 종이로 직접 만든 꽃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학생이 교사에게 주는 선물이 학생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지만 지나치게 침소봉대하는 느낌이 든다.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가을 소풍 때 김밥 음료수 등을 선생님에게 제공하면 안 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과민 반응이라는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은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따로 식사하는 보도사진을 보고 “이런 건 아닌 데∼”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과잉 대응과 소소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김영란법이 ‘그릇된 관습을 바뀌는 계기가 돼야’(본보 8월 4일 자)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진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관행을 뿌리 뽑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차제에 밥값이든 술값이든 ‘각자 내기’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각종 모임에서는 선배가 의레 계산하는 풍토가 있었다. 그래서 직장 상사들에게 지급된 것이 법인카드지만 한도를 초과하기 일쑤다. 퇴직 후에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다. ‘n분의 1’로 나눠 내는 경우와 눈치껏 돌아가며 내는 거다. 몇 사람 안 되는 모임도 “지난번에 누가 냈지”속으로 따지는 것도 불편하고 귀찮다.
그동안 각자 내기를 글로벌하게 ‘더치페이’라고 사용해 왔는데 국적 불명의 외래어라고 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엔 ‘더치페이’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일’이란 뜻을 가진 명사로 명기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공직자 등과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할 때 n분의 1로 계산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헷갈리면 ‘더치페이’를 하라고 쓰고 있다.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를 쓴 서옥식 전 연합신문 편집국장은 한정된 독자들만 볼 수 있는 글방에 ‘각자 부담’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더치페이’(Dutch pay)라는 말은 영어사전, 옥스퍼드사전에도 없는 완전한 콩글리시(Konglish=Korean English)라고 설명한다. 영어권에서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 고잉 더치(Going Dutch)라고 쓰는 게 바르다고 한다.
‘더치’(Dutch)는 영국이 과거 식민지 쟁탈 시기 경쟁자였던 네덜란드인(Dutchman)을 지칭할 때 쓰던 경멸조의 말로 ‘이기적이고 쩨쩨하다’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겼다. ‘수전노’ 또는 ‘인색한 사람들’을 비하하는 뜻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말로 ‘각자 내기’ ‘나눠 내기’로 쓰는 게 무난하다. 일부에서는 ‘인간관계 단절법’이라고 야박해하지만 정착되면 꺼릴 것 없다. 오늘 저녁 모임 때 각자 내기를 제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