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대화가 필요한 이유
밥상머리 대화가 필요한 이유
by 이규섭 시인 2016.09.23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의미의 프랑스어다. 우리 귀에 익숙한 용어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겉돈다.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천박한 대한민국 상층(上層) 부류들에겐 불통의 언어다. 원로 사회학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특혜와 책임’을 통해 저성장 양극화에 시달리는 사회에서는 특혜 받는 사람들의 책임의식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저자는 한국의 상층을 크게 고위직층과 대기업가층으로 구분한다. 그들은 치명적인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아랫사람과는 오직 주종의 관계만 맺는 천민적 사고를 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 상층의 부도덕과 몰염치는 막장 드라마를 무색하게 만든다. 귀족사회의 품격을 유지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유럽 귀족층과 대조를 이룬다. 거액의 주식을 뇌물로 받는 검사장, 금품을 받고 재판에서 편의를 봐준 부장판사는 사법정의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고서도 부패인 줄 모르는 모럴 해저드는 몰염치의 극치다.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을 일으킨 해운회사의 전 최고경영자는 회사가 어려울 때도 배당금과 퇴직금을 챙겼다. 휘청거리는 회사를 상대로 임대수익을 내고 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는 등 탐욕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취재를 빙자해 호화판 요트 여행을 일삼은 고위 언론인의 행태는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왜 포함돼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입증해 줬다. 자리를 이용하여 탐욕을 드러낸 파렴치한 탐위모록(貪位慕祿)의 생생한 사례들이다.
몰염치와 도덕적 해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화부 기자로 필명을 날린 원로 언론인은 법조인들에게 문학 서적 읽기를 권했다. “법관들이 완벽한 재판은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판단에 회의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서”라고 한다. 머리 좋아 법조문 달달 외어 사시 패스하느라 시와 소설을 접할 기회가 드물어 정서적 소양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엘리트계층의 속성 중 하나가 자만을 넘어 오만이다. 제 잘난 멋에 사는 걸 탓할 수 없지만 오만은 남을 얕잡아 보고 업신여긴다. 재벌가 상층도 마찬가지다. 부모 잘 만나 금수저가 되어 ‘땅콩 회항’ 같은 갑질로 우리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성의 부재가 원인이다. 인성은 인간 됨됨이가 얼마나 올곧게 형성되느냐에 달렸고 예전엔 밥상머리 교육에서 이뤄진다.
밥상머리 교육은 가정교육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소소한 이야기로 가족과 소통하는 것이다. 예전엔 아버지가 수저를 들어야 따라 들었다. 가장에 대한 가장 기초적 예의다. 길에서 어른들 만나면 인사 깍듯이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것도 기본예절이다. 밥상머리 대화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나만 아는’ 아이로 영악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은 모른 채 공동체 의식은 뒷전이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는 건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한국의 상층을 크게 고위직층과 대기업가층으로 구분한다. 그들은 치명적인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아랫사람과는 오직 주종의 관계만 맺는 천민적 사고를 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 상층의 부도덕과 몰염치는 막장 드라마를 무색하게 만든다. 귀족사회의 품격을 유지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유럽 귀족층과 대조를 이룬다. 거액의 주식을 뇌물로 받는 검사장, 금품을 받고 재판에서 편의를 봐준 부장판사는 사법정의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고서도 부패인 줄 모르는 모럴 해저드는 몰염치의 극치다.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을 일으킨 해운회사의 전 최고경영자는 회사가 어려울 때도 배당금과 퇴직금을 챙겼다. 휘청거리는 회사를 상대로 임대수익을 내고 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는 등 탐욕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취재를 빙자해 호화판 요트 여행을 일삼은 고위 언론인의 행태는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왜 포함돼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입증해 줬다. 자리를 이용하여 탐욕을 드러낸 파렴치한 탐위모록(貪位慕祿)의 생생한 사례들이다.
몰염치와 도덕적 해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화부 기자로 필명을 날린 원로 언론인은 법조인들에게 문학 서적 읽기를 권했다. “법관들이 완벽한 재판은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판단에 회의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서”라고 한다. 머리 좋아 법조문 달달 외어 사시 패스하느라 시와 소설을 접할 기회가 드물어 정서적 소양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엘리트계층의 속성 중 하나가 자만을 넘어 오만이다. 제 잘난 멋에 사는 걸 탓할 수 없지만 오만은 남을 얕잡아 보고 업신여긴다. 재벌가 상층도 마찬가지다. 부모 잘 만나 금수저가 되어 ‘땅콩 회항’ 같은 갑질로 우리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성의 부재가 원인이다. 인성은 인간 됨됨이가 얼마나 올곧게 형성되느냐에 달렸고 예전엔 밥상머리 교육에서 이뤄진다.
밥상머리 교육은 가정교육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소소한 이야기로 가족과 소통하는 것이다. 예전엔 아버지가 수저를 들어야 따라 들었다. 가장에 대한 가장 기초적 예의다. 길에서 어른들 만나면 인사 깍듯이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것도 기본예절이다. 밥상머리 대화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나만 아는’ 아이로 영악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은 모른 채 공동체 의식은 뒷전이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는 건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