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by 권영상 작가 2016.09.22
샘터 곁을 지날 때다. 팔순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샘터 자루가 긴 물그릇의 물을 누군가에게 힘겹게 떠먹이고 있다. 그분의 엉거주춤한 팔이 물을 받아 마시는 이의 얼굴을 가린다. 물을 다 먹였는지 그분이 팔을 내린다. 그제야 그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머리칼을 밀었는지 두상이 큼직한 쉰 살쯤 돼 보이는 사내다. 휠체어에 앉아있다. 할아버지가 사내의 입가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훔친다. 사내의 아버지인 듯하다. 사내는 아무 표정이 없다.
할아버지가 이번엔 손을 적셔 사내의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래도 사내는 아무 표정이 없다. 물그릇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자신의 머리에 얹었던 모자를 아들인 듯한 사내의 머리에 씌운다.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할아버지보다 너무나 덩치가 큰아들, 아니 휠체어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기우뚱거리며 돌부리에 부딪는 휠체어를 민다. 휠체어가 지면보다 조금 낮은 수로 위를 지날 때다. 휠체어가 넘어질 듯 휘청, 했다. 그와 동시에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 몸도 넘어질 듯 휘청, 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저런! 하는 신음이 나왔다. 휠체어가 다시 앞으로 나가는 걸 보고 나는 돌아섰다.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없는 쉰 살의 아들은 그 아버지에게 있어 그야말로 ‘어린 짐승’에 불과한 존재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식을 위해 휠체어를 밀며 험난한 길을 간다.
‘어린 짐승’에 불과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다. 열두어 살 때의 겨울밤이다. 눈 내리는 새벽 2시 무렵, 배가 끊어지듯 아파왔다. 내 신음을 들은 아버지가 깨어나 싸늘해진 내 손을 잡아보더니 체했다며 주섬주섬 옷을 입으셨다. 솔밭 너머 움펑집 할아버지한테 침을 맞히러 나를 데려가실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기어이 나를 업고 눈 내리는 솔숲길을 헤쳐 움펑집 문 앞에 당도하셨다. 이슥한 겨울밤, 아버지는 움펑집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셨다.
어렸지만 그때 나는 왜 아버지가 나를 업고 그 댁 문 앞에서 망설이셨는지 알았다. 움펑집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그분 아들 내외의 잠부터 깨워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어둠을 뚫고 나직이 입을 여셨다.
“미안하네만 후집씨!” 후집씨는 할아버지의 장성한 아들이었다. 두 번, 세 번! 아버지는 ‘미안하네만 후집씨’를 부르셨다. 이윽고 그 후집씨 방에 불이 켜졌다. 아버지는 그분의 양해를 얻어 나를 업은 채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셨다. 나는 사관이라는, 체기를 뚫어주는 침을 맞고 점점 따뜻해지는 몸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린 짐승 같은 나를 등에 업고, ‘미안하네만 후집씨’를 부르시느라 한참을 망설이던 아버지를. 이웃 할아버지의 잠을 깨우는 일도 젊은 아버지로서 못하실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무엇보다 막내인 내가 소중하였다.
아들에게 샘물을 떠먹여주던 팔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를 보는 듯해 코끝이 시큰하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머리칼을 밀었는지 두상이 큼직한 쉰 살쯤 돼 보이는 사내다. 휠체어에 앉아있다. 할아버지가 사내의 입가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훔친다. 사내의 아버지인 듯하다. 사내는 아무 표정이 없다.
할아버지가 이번엔 손을 적셔 사내의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래도 사내는 아무 표정이 없다. 물그릇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자신의 머리에 얹었던 모자를 아들인 듯한 사내의 머리에 씌운다.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할아버지보다 너무나 덩치가 큰아들, 아니 휠체어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기우뚱거리며 돌부리에 부딪는 휠체어를 민다. 휠체어가 지면보다 조금 낮은 수로 위를 지날 때다. 휠체어가 넘어질 듯 휘청, 했다. 그와 동시에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 몸도 넘어질 듯 휘청, 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저런! 하는 신음이 나왔다. 휠체어가 다시 앞으로 나가는 걸 보고 나는 돌아섰다.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없는 쉰 살의 아들은 그 아버지에게 있어 그야말로 ‘어린 짐승’에 불과한 존재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식을 위해 휠체어를 밀며 험난한 길을 간다.
‘어린 짐승’에 불과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다. 열두어 살 때의 겨울밤이다. 눈 내리는 새벽 2시 무렵, 배가 끊어지듯 아파왔다. 내 신음을 들은 아버지가 깨어나 싸늘해진 내 손을 잡아보더니 체했다며 주섬주섬 옷을 입으셨다. 솔밭 너머 움펑집 할아버지한테 침을 맞히러 나를 데려가실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기어이 나를 업고 눈 내리는 솔숲길을 헤쳐 움펑집 문 앞에 당도하셨다. 이슥한 겨울밤, 아버지는 움펑집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셨다.
어렸지만 그때 나는 왜 아버지가 나를 업고 그 댁 문 앞에서 망설이셨는지 알았다. 움펑집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그분 아들 내외의 잠부터 깨워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어둠을 뚫고 나직이 입을 여셨다.
“미안하네만 후집씨!” 후집씨는 할아버지의 장성한 아들이었다. 두 번, 세 번! 아버지는 ‘미안하네만 후집씨’를 부르셨다. 이윽고 그 후집씨 방에 불이 켜졌다. 아버지는 그분의 양해를 얻어 나를 업은 채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셨다. 나는 사관이라는, 체기를 뚫어주는 침을 맞고 점점 따뜻해지는 몸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린 짐승 같은 나를 등에 업고, ‘미안하네만 후집씨’를 부르시느라 한참을 망설이던 아버지를. 이웃 할아버지의 잠을 깨우는 일도 젊은 아버지로서 못하실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무엇보다 막내인 내가 소중하였다.
아들에게 샘물을 떠먹여주던 팔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를 보는 듯해 코끝이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