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향해 따뜻한 박수를 보내자
서로를 향해 따뜻한 박수를 보내자
by 한희철 목사 2016.09.07
어릴 적 기억들이 담겨 있는 기억의 창고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한 보물창고일지 모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빛나는 보석들이 가득 담겨 있으니 말이지요. 어쩌면 고향은 그런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흐르는 세월을 따라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고향만큼 아름다운 기억이 담겨 있는 곳은 지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포클레인으로 땅을 헤집는 대신 손에 붓을 들고 조심스레 흙을 털어나가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귀한 유물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고향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곳은 따로 없을 것입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가마와 관련된 일입니다. 동네에서 뚝 떨어져 저수지의 제방이 있는 입북리라는 곳에 초등학교 친구의 친척 되는 분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습니다. 친구를 따라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마터를 찾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물레를 돌려 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도 그러했지만,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장작으로 불을 때는 모습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흙이 불을 만나 그릇이 된다는 과정 자체가 경이롭게 다가왔지요.
그런데 도자기를 굽는 곳을 찾았을 때 이해할 수가 없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마터 옆에는 깨진 도자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쌓여 있는 도자기 중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적지가 않았습니다. 버리는 것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집으로 가져와서 그릇이나 화병으로 쓰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깨진 도자기가 아니라 깨뜨린 도자기였습니다. 도자기를 불에 구운 뒤 꺼냈을 때 작은 균열이나 흠이 있으면 가차 없이 도자기를 깨뜨려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라보는 이에게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띄지도 않아 멀쩡해 보이지만, 도공은 스스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운갈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를 심을 때가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농부는 마른 논을 그냥 갈았습니다. 물기를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논을 갈고 또 갈면 마침내 논은 먼지처럼 고운 가루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내며(그게 천둥지기였지요!) 비가 쏟아져 내리면 온 식구가 논으로 달려가 모를 심었습니다. 고운 가루가 되도록 갈아놓은 논에 비가 오면 논은 이내 곤죽이 되는데, 그러면 논을 갈고 삶고 할 것도 없이 모를 꽂아나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마른 논을 갈고 또 갈았던 것을 더운갈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모르게 더운갈이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길을 인내하며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곧 다가오는 추석 명절,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더운갈이를 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면 우리의 명절이 더욱 따뜻하고 훈훈한 시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가마와 관련된 일입니다. 동네에서 뚝 떨어져 저수지의 제방이 있는 입북리라는 곳에 초등학교 친구의 친척 되는 분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습니다. 친구를 따라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마터를 찾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물레를 돌려 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도 그러했지만,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장작으로 불을 때는 모습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흙이 불을 만나 그릇이 된다는 과정 자체가 경이롭게 다가왔지요.
그런데 도자기를 굽는 곳을 찾았을 때 이해할 수가 없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가마터 옆에는 깨진 도자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쌓여 있는 도자기 중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적지가 않았습니다. 버리는 것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집으로 가져와서 그릇이나 화병으로 쓰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깨진 도자기가 아니라 깨뜨린 도자기였습니다. 도자기를 불에 구운 뒤 꺼냈을 때 작은 균열이나 흠이 있으면 가차 없이 도자기를 깨뜨려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라보는 이에게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띄지도 않아 멀쩡해 보이지만, 도공은 스스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운갈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를 심을 때가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농부는 마른 논을 그냥 갈았습니다. 물기를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논을 갈고 또 갈면 마침내 논은 먼지처럼 고운 가루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내며(그게 천둥지기였지요!) 비가 쏟아져 내리면 온 식구가 논으로 달려가 모를 심었습니다. 고운 가루가 되도록 갈아놓은 논에 비가 오면 논은 이내 곤죽이 되는데, 그러면 논을 갈고 삶고 할 것도 없이 모를 꽂아나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마른 논을 갈고 또 갈았던 것을 더운갈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모르게 더운갈이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길을 인내하며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곧 다가오는 추석 명절,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더운갈이를 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면 우리의 명절이 더욱 따뜻하고 훈훈한 시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