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삶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는가?

삶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는가?

by 정운 스님 2016.08.23

신라 시대, 인욕을 잘한 스님이 있다. 비단 장사를 하는 한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살았다. 어느 날, 이 청년이 대관령을 걷고 있는데, 누더기를 걸친 한 노승이 고갯마루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기이한 모습에 이 청년이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아까부터 무얼 하고 계십니까?”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네.”
“아니, 가만히 서 계시면서 무슨 공양을 올린다는 겁니까?”
“내 옷 속에 있는 이와 벼룩에게 피를 먹이고 있네. 내가 움직이면 이나 벼룩이 피를 빨아 먹는데, 불편하지 않겠나.”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고, 스님은 길을 떠났다. 스님이 한동안 걷고 있는데, 뒤에서 그 청년이 스님을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노승은 드디어 오대산 동관음암에 도착했다. 이 관음암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암자 중의 하나이다. 사찰에 도착한 노승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쫓아오는가?”
“저는 비단을 팔아서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장사꾼입니다. 오늘 스님께서 미물에게 자비 행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승려가 되고 싶어서 스님을 쫓아왔습니다.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승려가 되고 싶다는 거지.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는가?”
“네, 제가 스님을 의지해 출가하는데, 스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이튿날, 스님이 청년을 불러 말했다.
“저 큰 가마솥을 옮겨서 새로 걸도록 해라.”
청년은 하루 종일 흙을 파다가 짚을 섞어 이기고 솥을 새로 걸었다. 일을 다 마치자, 스님께서 솥을 보고 말했다.
“걸긴 걸었는데, 이 아궁이는 솥이 너무 크구나. 저쪽 아궁이로 옮겨 다시 걸도록 하여라.”
다음 날, 청년은 옆 아궁이에 솥을 옮겨 걸었다. 그런데 걸어 놓고 나면, 스님께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걸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무려 아홉 번이나 하였다. 청년이 아홉 번을 묵묵히 실천하자, 스님이 제자를 불러 말했다.
“음 장하군. 자네가 얼마나 잘 참는가를 시험하고자 한 것이네. 자네가 아홉 번이나 솥을 고쳐 걸었으니 법명을 ‘구정(九鼎)’이라고 하자.”
이후 이 청년은 열심히 수행하여 높은 경지에 올랐고, 훗날 구정 선사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참는다는 것이 스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학생은 힘들어도 참으며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가장은 일터에서 인욕을 해야 살아갈 수 있으며, 부부도 참아야 가족이 화목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를 ‘감인(堪忍) 세계’라고 하였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어쩌겠는가? 참는 것이 승리자임을 기억하면 된다.